전쟁영화들이 으레 지니는 ‘과다하게’ 휩쓸리고, 화려하면서도 광활한 장면은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장면의 편린들 모두 우리 삶의 그것이듯 직격탄처럼 와 닿고, 뭉뚱그려 넘어가는 법 없이 모든 순간이 ‘내 경험의 일체화’를 선사한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전쟁의 기록들이 전율을 넘어 ‘내 삶’일 수 있다는 뼈저린 체험을 안기는 놀란 감독의 이번 실험은 꽤 성공적이다. ‘과학’을 알아야 한다며 ‘인터스텔라’에 열광했던 관객은 이번에 ‘전쟁’과 ‘역사’를 알기 위해 이 한편의 서사시에 몰입할 게 틀림없다.
인기 스타 대신 무명 배우 중심으로 꾸린 것도 특정인의 영웅담이 아닌, 보통 사람의 체험기를 통해 관객의 직접 체험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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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감을 더욱 높이는 수단으로 감독은 당시 전쟁에서 사용한 실제 소품들을 대부분 조달했고, 천재 음악감독 한스 짐머를 통해 디지털 장치로 가장 원색적인 아날로그 소리를 구현했다.
퇴각 과정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에는 인간의 선과 악이 공존한다. 허겁지겁 빵 한 조각 들기 무섭게 들이닥친 어뢰로 갇힌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한 동료의 희생정신이나 무거운 배에서 ‘내려야 할’ 사람을 지정하기 위해 벌이는 토론에서 드러난 인간의 이기심은 모두 우리 삶의 원형이다.
감독도 강조했듯, 영화는 IMX관에서 봐야 재미가 남다르다. 질퍽한 소리, 아날로그의 입체감, 인물의 세세한 표정에서 지금 ‘그곳’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