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계 총아, 이번엔 사후세계 “대립 속 균형감 찾고 싶어”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7.15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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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김보영 작가…4년 만에 장편소설 ‘저 이승의 선지자’ 출간

한국 SF계 총아, 이번엔 사후세계 “대립 속 균형감 찾고 싶어”


SF(공상과학소설) 장르에서 여성 작가 김보영(42)이 주목받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상상력과 이 상상을 순 문학에 버금가는 글솜씨로 콘텐츠를 알차게 버무리기 때문이다. 2004년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에서 중편 소설 ‘촉각의 경험’으로 당선될 때부터 그는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어디서 나온 듯한 소재인데도 전혀 다르게 읽히는 그의 작품들은 흥미와 긴장으로 시작해 알 수 없는 환상의 세계에 이끌리다 각성이나 철학적 논쟁의 결론과 마주하기 일쑤다.



‘촉각의 경험’에서 다룬 복제인간은 영화 ‘아일랜드’ 식의 자극적인 접근법이 아닌, 두 인간의 교감이나 유용성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주제로 수렴된다. 2013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7인의 집행관’은 조직폭력의 현실, 신들의 이야기로 건너가는 환상, 그리고 진실 찾기에 골몰하는 미스터리까지 종횡무진 달려가다 결국 ‘나란 무엇인가’란 원초적 정의와 맞닥뜨린다.

단순한 장르 문학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그가 4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저 이승의 선지자’를 내놨다. 이번엔 ‘사후세계’가 주요 소재다. 인간의 생존 관점에서 저승이 사후이지만, 사후 세계 입장에선 저승이 ‘저쪽 이승’인 셈이다. 작가는 “사후세계를 과학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빛이 갈 수 있는 거리 너머의 세계가 명계(저승)라는 가정하에 우주를 더 확장한 셈이에요. 저승에서 영원히 사는 물리적 실체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에서 구상이 시작됐죠. 숨도 안 쉬고 영양 공급도 필요 없는 실체라면 비정형의 생물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렇게 깊이 들어가니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생물이고 단순히 변신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결론까지 도달했어요. 세계관은 그렇게 출발했어요.”

탁월한 상상력과 순 문학에 버금가는 글쓰기로 2004년 데뷔때부터 이름을 날린 김보영 작가가 최근 두번째 장편소설 '저 이승의 선지자'를 내놓았다. 사후세계를 소재로 주신과 젊은 신의 대결을 통해 균형의 가치를 모색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전언이다. 탁월한 상상력과 순 문학에 버금가는 글쓰기로 2004년 데뷔때부터 이름을 날린 김보영 작가가 최근 두번째 장편소설 '저 이승의 선지자'를 내놓았다. 사후세계를 소재로 주신과 젊은 신의 대결을 통해 균형의 가치를 모색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 세계관을 그려내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재 이 ‘세상’을 사는 ‘나’로서 몰입하기 힘든 실정인 데다, 자아에 갇혀있는 평범한 존재가 우주 전체를 ‘나’와 동일시하는 가정 자체가 설득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지구의 강원도 어디쯤이 아닌, 우주 저 어딘가 불멸의 세계에 머물고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세계 창조자이자 선지자인 나반은 자신이 분리한 신체를 이용해 인격체 아만을 창조하고, 두 선지자는 거듭된 실험을 통해 하계(이승)를 만든다. 하계에서 인간이라는 인격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뒤 나반과 아만은 반목이 시작된다. 아만이 인간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독립적 삶을 보장하는 데 비해, 나반은 명계의 개별체가 하계를 수행의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건 갈등을 통한 균형이다. “거의 모든 신화에서 신과 인간은 대립적이었죠.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왕따’였고, 예수도 마찬가지였고요. 노자가 ‘신들은 인간을 짚으로 만든 인형으로 본다’고 했는데,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세계 전체의 방향성을 보느라 개인의 고통과 삶은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이보다 근시안적 사고를 하는 젊은 신들은 인간을 더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을까요. 제 소설에서도 이런 대립 속 균형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한국 SF계 총아, 이번엔 사후세계 “대립 속 균형감 찾고 싶어”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푸는 작업은 결국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인가, 공동체적 존재인가 하는 정체성의 의문이 그것. 많은 사람이 전체의 생각과 동일시하는 가치를 자신이라 생각하며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가 하면, 통제와 지배가 익숙한 경우엔 세상 전체가 ‘나’라는 오만에 빠지기도 쉽다.

그들이 나라는 착각에 대한 비극,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차이에 대한 비극 모두 작가가 중요하게 판단하는 균형의 틀이다. 작가는 “우리가 여러 면에서 섞여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진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운 그는 탁월한 상상력과 글쓰기에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꿈의 속도를 늦춰야 했다. SF 장르를 취급하는 출판사도, 시스템도 2000년 이전에는 찾기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게임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소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방향의 글쓰기가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 한 곳만 바라보는 열정과 멈추지 않은 끼로 그는 내는 작품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 당선은 물론, 영화 ‘설국열차’ 과학 자문을 맡을 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유망한 SF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는 “SF는 지식 수용성 때문에 지식인이 제1 독자이고, 사고의 유연성으로 아이들이 제2 독자”라며 “어릴 때부터 SF와 친해질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저 이승의 선지자=김보영 지음. 아작 펴냄. 266쪽/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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