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기가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 했다. 3개월밖에 못 산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1년이 남았다면 책을 쓰고 10년이 남았다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텐데, 남들보다 빨라 죽을 것이란 사실은 확실한데 남은 시간을 모르니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그의 주치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폐암 선고를 받기 전이나 받은 후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과 그런데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똑같다고 말한다. 다만 폐암 선고 뒤엔 죽음을 좀더 분명히, 절실히 느끼게 된다는 점만 다르다. 그러니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이나 죽음을 안고 산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클럽에 가서 신나게 춤을 추며 놀거나 친한 사람들과 만나 술 마시며 떠들거나 아쉬웠던 여행을 떠나 세상 구경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 육체의 쾌락이나 안목의 정욕을 채우는 것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먼지처럼 사소한 것이다. 죽음 앞에서 원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고 그 중요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역설적인 것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이 평소에 바쁘다고 소홀히 했던 가족과 종종 불평했던 일을 비롯한 일상이란 점이다. 그래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온 그 일상의 삶을 지속하며 가치 있으나 바쁘다고 미뤘던 일을 마무리하기를 원한다. 폴이 레지던트로 해왔던 수술을 계속 집도하며 아기를 갖고 책을 쓰려 했던 것도 자기가 그 때까지 해왔던 일상과 가족, 미뤘던 꿈이 가장 중요했음을 죽음 앞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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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끝이 찾아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초점이다. 모든 인생은 결국 죽음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고 한다면 방향은 큰 의미가 없다. 방향은 시간의 개념을 포함한다. 방향의 중요성을 말할 때 우리가 진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선, 향상, 성장 등 시간에 따라 더 나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과 비교할 내일을 알 수 없다면 방향은 힘을 잃는다.
반면 초점은 매 순간순간의 일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할 때 진짜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해 남는 것은 살아온 순간뿐이다. 그러니 내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 불확실한 삶에서 최선은 한 순간, 한 순간을 가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춰 채워나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어떤 결심)는 이해인 수녀의 고백처럼 몇 년을 살든 우리 인생은 한 순간순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