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위당정청 1차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7.6.5/뉴스1
어느 때보다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지닌 무게가 다르다. 국회의원 한 명의 생각이 아닌 여당 정책 책임자의 정책으로 전해진다. 힘이 실린 그의 말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 방향도 엿볼 수 있다. 김 정책위의장은 “국정안정이 최대 목표”라며 말을 아꼈지만, 그의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까'로 가득하다.
곧 경찰에 쫓기며 숨어 지내는 수배자가 됐다. 수배가 풀리고 군 생활을 마친 후에도 성남을 잊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24살 때다.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빚을 갚자는 생각을 했다. 많은 군중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외쳤던 '민주화의 약속, 민주정부 수립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이 컸다.
보따리를 싸서 성남에 왔다. 평생 성남과 함께 살기로 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성남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성남 곳곳에서 연일 집회가 열렸는데, 시위대열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지휘했다”며 “성남시민들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청춘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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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 정착한 그는 성남청년단체협의회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 성남연합 공동의장, 성남시 고도제한해결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지내며 성남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시민운동만으론 세상을 바꾸기 힘들단 생각에 현실 정치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2002년 대선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성남 공동본부장을 맡아 열심히 뛰었다. 이후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성남시 수정구, 40세)에 당선됐다.
그는 “17대 국회에서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재래시장 살리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쥐어준 돈에서 맡을 수 있었던 생선냄새 때문에 재래시장은 나의 정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2004년 재래시장특별법을 만들었다. 유통산업의 전면 개방과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변화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생계를 위협받는 중소 영세 상인을 보호하고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률이다. 당시엔 재래시장 상인을 보호하는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국회 안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당내 의원들과 합심해 17대 국회 민생법안 1호로 통과시켰다.
이후 서민경제의 고충을 더 살피기 위해 재래시장을 자주 찾았다. 보좌진 1명을 재래시장 전담으로 정하고 시장에 상주시키며 열정을 쏟았다. 그런 의정활동 덕분에 그는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가 됐다. 이후 민주당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지냈다. 또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으로 중소상공인과 서민을 위한 법안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시민단체들이 평가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고, 4년 연속 국회에서 선정한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그는 지금도 성남 모란시장을 자주 찾는다. 그에겐 특별한 공간이다. 20대 가난한 청년시절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밤낮없이 뛰어다닐 때 이곳에 가면 가벼운 호주머니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소주 한병 값이면 무한리필로 주는 돼지껍데기나 내장은 가난한 그에게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김 정책위의장은 "학생운동을 하는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가 당시 ‘태년이가 틀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네. 저만하면 사람 구실하면서 살겠구먼’이라고 하셨는데,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돌아가셨다”며 "그때 아버지 말씀은 두고두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줬다"고 말했다.
직업이 '특위간사', 누리과정 정부 전액지원 이끌기까지
'직업이 특별위원회 간사, 협상의 달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의 별칭이다. 현안을 푸는 능력이 탁월하다. 협의하고 설득하는 게 그의 장점이다. 오랜 시민운동 경력 덕분이다. 국회 상임위원회 특위 간사만 4번(교문위, 예결위, 정치쇄신, 정치개혁)하는 등 당내에선 대책반장으로 통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기획위)가 지난달 25일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유아들을 위한 공교육) 예산 전액을 중앙정부가 국고로 부담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의 노력이 컸다. 누리과정 국고지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그간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갈등 요소 중 하나였다. 국회에서도 진통이 많았다. 김 정책위의장이 지난해 누리과정 예산안 입법을 성사시켜 누리과정 예산 전액 국고 부담의 첫 발을 내딛게 했다. 현재 국정기획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 공약을 새 정부 초기 최우선적으로 실현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의 교육 개혁안은 20대 국회에 들어서야 빛을 봤다. 20대 국회때 민주당 누리과정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야 간 쟁점이었던 누리과정 예산 확대에 주력했다. 19대에 이어 교문위 활동을 계속하며 초등교육법 개정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이중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올해 예산안이 처리된 지난해 12월2일 본회의에서 '누리과정 패키지법'으로 묶여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법·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국가재정법 개정안 등과 함께 가결됐다.
◇국회에서 드러난 '장시호'…최순실 비리예산 감축도= 김 정책위의장의 국회 교문위 활동은 누리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박근혜 정부때 제1야당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부의 '적폐'를 파헤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일가 중 한 명인 '장시호'라는 인물에 대해 파헤친 인물 중 한명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삼성전자가 장시호씨의 회사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5억원을 지원하며 연루됐다는 사실 등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2015년 국정감사 때부터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의 핵심인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등을 파헤친 게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로 창조경제 예산이 비리예산이었다는 점이 드러났을 때도 그의 역할은 컸다. 해당 예산안을 손보는 과정에서 그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이 사업과 관련된 예산 1278억원 중 878억원 가량을 줄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오랜 시민운동 경험으로 정책을 만들고 다듬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협치를 강조하는 스타일로 여야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