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정치적 문제에는 끼지 않으려는 증권사 차원의 정책적 판단으로만 생각했다. 통상 증권사들은 고객으로부터 주문내용을 입증하기 위해 전화 내용을 일정 기간 녹음, 보관, 유지한다.
그때의 궁금증이 최근에서야 풀렸다. 한 애널리스트의 입을 통해서다. "오늘도 저쪽(금융감독원)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탄핵에 이어 2명의 유력 대선 후보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교하지 말라고 하더니, 정치 테마주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말라고 하네요.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건지…”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그런 메일을 공식적으로 보낸 적이 없다. 금융위원회나 금융투자협회가 그런 내용으로 보냈을지는 모르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20년 경력 한 애널리스트의 말은 더 충격적이다. "금감원의 동향체크 등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처럼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권고 아닌 권고가 많았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련한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언질을 받았다. 미국의 신임 대통령과 정책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와 관련해 입을 다물라고 하면 우리보고 아예 일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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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실망스러운 것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금융당국의 처신이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당연히 증권사는 당국 눈치를 볼 수 밖 에 없다.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당국이 왜 애널리스트의 입단속에 나서야 했을까.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이 무서워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론을 통제할 필요를 느꼈거나 어수선한 시기를 기회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었거나 아니면 그냥 늘 하던 대로 했던가 등의 이유였지 않았을까. 상상력의 나래를 펴다 보니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통제 속에 있어 왔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여의도 윤중로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분홍빛 벚꽃이 지고 이제 제법 파릇파릇한 이파리들이 올라왔다. 봄이지만 여전히 추운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