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유치원 언제까지" 앵그리맘 뿔났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 노규환 인턴 기자 2017.04.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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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이슈공약3]①문재인·안철수 공약 경쟁에 현장·학부모 '실망감'

전국 맘 커뮤니티 회원들이 한 대선주자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2017.3.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전국 맘 커뮤니티 회원들이 한 대선주자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2017.3.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이 엄마 100명의 눈이 한 곳을 향한다. 입구가 좁은 플라스틱 박스다. 순서가 돌아온 엄마는 긴장감에 거의 울기 직전이다. "도저히 못 뽑겠다"며 아이를 대신 내보낸다. 재밌는 뽑기 놀이인 듯 아이는 머뭇거림 없이 손을 넣어 탁구공 하나를 뽑는다. 도장이 찍히지 않은 하얀 탁구공. 엄마는 끝내 눈물을 쏟는다. 다음 순번엔 환호가 뒤따른다. 파란 도장이 찍힌 탁구공을 보자 탄식과 박수가 좁은 공간을 채운다. 12개의 당첨 탁구공 중 하나가 줄었다는 아쉬움의 탄식, 그리고 감출 수 없는 부러움의 박수다.

지난해 11월말 서울 시내 한 공립 단설유치원의 작은 교실 풍경이다. 학부모들은 공립유치원 입학을 '로또'라 부른다. 한 학년(연령)에 10명을 뽑는데 100여명이 몰리는 건 보통이다. 사립유치원에 보내면 보통 월 40만~50만원을 학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유치원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유치원이면 오전·오후 등하원도 부모의 몫이다. 맞벌이라도 할라치면 사람을 둬야 한다. '운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립유치원 학부모가 된 이들은 부담을 호소하지만 사정은 수십년째 그대로다. 서울의 공립유치원 취원율은 불과 5.7%(2015년 국정감사 자료)다.



◇유치원 공약 난맥상만 들추는 대권주자들=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거 때마다 관련 공약이 쏟아진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후보 캠프별로 유치원·어린이집 제도를 핵심으로 한 보육공약이 상당하다. 하지만 정작 교육현장은 기대하지 않는다. 매번 공약이 나오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한 사립유치원 교원은 "수십 년 전부터 똑같은 문제가 제기돼왔다"며 "한두 건의 공약이나 법 개정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달라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립유치원은 학비 부담이 거의 없지만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자리는 수십 년간 사립유치원이 채워왔다. 사립유치원은 다시 대형 사립과 소규모 사립으로 나뉜다. 대형 사립유치원은 상대적으로 교직원 처우가 좋고 공립보다 차별화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반면 소규모 사립유치원은 대형 사립은 물론 병·단설에 치여 갈수록 운영 여건이 어려워진다. 이 사이에 탁구공 하나만 쳐다봐야 하는 유아와 학부모가 있다.



사정이 이런데 대선주자들의 공약은 부실하기만 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사립유치원 원장들 앞에서 "대형 단설 신설을 억제하겠다"고 했다가 '앵그리맘'(angry+mom)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육아커뮤니티에서 공공의 적이 됐다.

단설은 공립유치원 중에도 별도 건물과 원장을 둬 병설보다 한 단계 등급이 높은 로또다. 학부모들의 선호가 절대적이다. 안 캠프는 "사립유치원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대형 단설 대신 병설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급히 수습을 시도했지만 유치원 시스템에 대한 무지를 들킨 후였다. 지지율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경쟁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재빨리 "사립유치원을 국공립으로 인수하거나 공공 유치원으로 육성하고 사립유치원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치고 나왔다. 하지만 역시 현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정부가 이미 비슷한 정책을 추진 중인데 구조적 문제로 속도가 붙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매각 대상인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매각을 거부하고 있다. 이기심만을 탓하긴 어렵다. 정부의 가용 예산 자체가 적다. 헐값에 넘기라니 반기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학교법상 토지와 건물 등 재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매각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인사말을 들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2017.4.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지난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인사말을 들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2017.4.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공립 늘리고 사립 처우 개선…듣기는 좋지만=같은 맥락에서 사립 교원 처우 개선 공약도 듣기는 좋지만 공염불로 들린다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사립유치원 교원 처우는 전적으로 원장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립유치원 교원에게 교직수당과 인건비보조금을 합해 약 50여만원(서울 기준)의 수당을 지급한다. 국공립 교원과 격차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개인통장으로 지급하고 계좌를 수시로 검사한다. 교원 계좌를 정부가 들여다본다는 거다. 인권침해지만 다들 받아들인다. 원장들이 수당을 가로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고육책이기 때문이다.

원장들만을 탓할 문제도 아니다. 구조적으로 열악한 사립유치원 자체가 문제다. 엄연히 수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그 과정에서 부실로 밀려났다. 간혹 폭행사건 등으로 기형적 유아교육 문화의 단면이 드러나지만 그걸로 끝이다. 사립들이 대형 공립 단설의 개설을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사립의 경영난이 심화할수록 교원들의 처우는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전폭적인 예산 투입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그래서 더 회의적이다. 서울 소재 A유치원 원장은 "공약은 다 근사하지만 결국 문제는 돈"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설 하나 짓는 데 수백억 원이 들고 사립 교원 수당을 올려주려면 수십조 원이 들 것"이라며 "그런 공약은 내가 교사생활을 시작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라고는 수당 조금 늘어난 것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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