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이라는 판타지, 그 유랑의 순환경제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2017.04.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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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56 – 의적 : 부정한 재물을 훔쳐 약자를 돕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부정하게 모은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로운 도둑.’ 국어사전에 나오는 ‘의적(義賊)’의 풀이다. 의로운 도둑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도둑은 어쨌든 범죄자가 아닌가. 붙잡히면 법적인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적에게 호감을 품는다. 심지어 소설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삼아 떠받든다. 어째서일까?

사극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홍길동도 사사로운 복수를 넘어 의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못된 양반을 혼내주고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며 인심을 얻는다. 허균이 쓴 소설 ‘홍길동전’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연산군 때의 실존인물 홍길동이 의적이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의적으로 알려진 임꺽정과 장길산도 마찬가지다.



이 세 사람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거론한 조선시대 3대 도적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큰 도적들이 의적으로 미화된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의적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익이 ‘가장 큰 괴수’라고 칭한 임꺽정만 해도 명종 재위기에 잔인무도한 범죄행각으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한 백성이 적당(賊黨 : 임꺽정 무리)을 고발했다가 도적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를 구할 요량으로 자기가 고발했다고 둘러댔습니다. 적들은 촌가에서 밥을 지어먹고는 둥그렇게 둘러앉아 아들의 배를 갈라 죽였다고 합니다.”(명종실록)



아무리 나라에서 편찬한 역사기록이라고 해도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는 않는다. 팩트만 보면 백성을 돕는 의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임꺽정은 일제 강점기에 벽초 홍명희가 연재한 역사소설을 통해 민중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백성 입장에서 희대의 도적을 재해석한 것이다.

소설 속의 임꺽정과 청석골 두령들은 유쾌하고 해학이 넘친다. 그들은 주로 하층민 등치는 양반이나 나라에 바치는 봉물을 털었다. 비록 통행세를 뜯긴 했지만 백성들과는 대체로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이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있을 법하기에 호응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 임꺽정이 민심을 얻은 근거는 역사기록의 행간에서 읽힌다.

“그는 원래 양주 백성인데, 경기에서 해서(海西 : 황해도)까지 근방의 아전들과 은밀히 통해 있어, 관가에서 잡으려고 하면 그 기밀이 먼저 누설되었다.”(성호사설)


지방관아의 아전들이 관군의 움직임을 귀띔했다. 하물며 백성들은 어땠을까? 당시 민초들에게 도적질보다 더 나쁜 것은 지방수령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고 재물을 강제로 빼앗음)요, 그 뒷배인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의 부정부패였다. 백성들로서는 이런 지배층을 괴롭히는 큰 도적이 차라리 반갑지 않았을까.

백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조선의 임금들은 입버릇처럼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읊조렸다. 하지만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부당한 현실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쌓인 울분도 풀어야 한다. 임꺽정의 대담한 도적질은 그들에게 ‘사이다’였다. 아무 것도 믿을 게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통쾌한 복수이자, 대리만족의 판타지였다.

그래서일까. 홍명희의 소설에는 임꺽정에게 협조하는 인근 주민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그들은 낮에는 관리에게 조아리는 백성이지만, 밤만 되면 의적의 충실한 졸개로 변신한다. 주막 주인, 상인, 왈패, 중, 기생, 무당, 점쟁이, 광대, 포교 등이 첩보원으로 나선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가 힘이다. 숙종 조의 도적 장길산이 붙잡히지 않은 비결도 여기에 있다.

“좁은 국토 안에서 몸을 숨기고 도적질하는 것이 마치 새장 속에 든 새와 물동이 안에 든 물고기에 지나지 않는데, 온 나라가 힘을 기울였으나 끝내 잡지 못했다.”(성호사설)

이른바 의적이라 함은 신출귀몰한 행적이 전매특허다. 허균이 되살린 홍길동이 비바람을 부르고 축지법과 분신술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면, 황석영의 장길산은 보다 정치적이다. 그는 민중의 바다에 몸을 숨기고 잠행을 거듭한다. 그러나 맥락은 다르지 않다. 마침내 백성과 혼연일체가 되어 모두가 홍길동이고 너와 내가 장길산인 경지에 이른다.

알고 보면 조선시대 도적집단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들은 대부분 고향을 등지고 떠도는 유민들이었다. 흉년이 들거나 가렴주구가 심해지면 백성들은 집을 버리고 유랑길에 올랐다. 그 가운데 일부가 산중의 도적 소굴로 흘러들었다. 생존이 곧 소명인 하루살이 인생들에게는 도적질도 삶의 방편 중 하나였다.

유랑이라고 해서 무작정 산으로 들로 흩어지는 건 아니었다. 길 위에서 살아가려면 네트워크가 필수다. 대표적인 것이 친인척이다. 유민들은 사돈의 팔촌을 찾아 길을 나섰다. 누군가의 집에 데릴사위로 눌러앉기도 했다. 가볍게 떠나고 쉽게 얹혀사는 유민의 삶. 그들이 때로는 도적으로, 때로는 백성으로 둔갑술을 펼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민들에게 도적은 또 하나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큰 도적들이 여기저기 소굴을 두고 지역을 넘나들면서도 종적이 묘연했던 이유다. 모이면 도적이요, 흩어지면 백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거창한 이념도 그럴싸한 명분도 없다. 그저 길 위에서 살아가는 노하우일 뿐이다. ‘의적’이라는 판타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기막히게 현실적이다.
의적이라는 판타지, 그 유랑의 순환경제
어찌 보면 유랑은 순환경제다. 사람이 움직이면 돈과 재물도 흐른다. 흐르면서 탐욕으로 막힌 경제 급소를 뚫어준다. 결국은 분배 문제다. 소수가 부당하게 많이 가지면 다수는 공정한 분배를 꿈꾸기 마련이다. 부정한 재물을 훔쳐 약자를 돕는다는 의적 판타지도 백성들의 그 뜨거운 열망을 극적으로 대변한다. 어디 조선시대만 그러한가. 역사는 반복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장미가 만개할 무렵엔 길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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