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마다 촘촘히 깔린 돌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트리니다드는 쿠바의 중부에 있는 휴양도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이었던 1514년에 세워진 고도(古都)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쿠바를 찾은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러 가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내게 인상 깊게 남은 것은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이 도시는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눈물이라도 솟아오를 것처럼 슬픈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트리니다드에는 그런 역사적 비극을 증언하는 장소들이 곳곳에 있다. 사연을 알고 보면 도저히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는 곳들이다. 처음 트리니다드에 간 사람들은 쿠바의 다른 도시들과 무언가 다른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트리니다드의 길마다 돌이 깔린 데는 아픈 배경이 있다. 앞에서 밝힌 대로 트리니다드에서 생산된 설탕과 광물은 대부분 스페인으로 실려 갔다. 그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큰 배를 가득 채우고도 넘칠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돌아올 때였다. 싣고 올 게 없으니 배가 텅텅 비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빈 상태로 항해를 하면 배가 중심을 잃고 심하게 흔들릴 수 았다고 한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스페인의 돌멩이를 한 배씩 싣고 왔다고 한다. 그때 버려진 돌들이 길마다 깔린 것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비극이 배어있는 마요르 광장/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이 광장 역시 노예들의 눈물이 배어있는 곳이다.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노예가 워낙 많다 보니 농장주들은 좋은 신체조건의 노예를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그 일을 수월하게 완수하기 위해, 비스듬하게 땅을 고른 뒤 반나체인 노예의 손발을 묶은 상태에서 그 위를 계속 돌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한눈에 비교하기에 좋다나?
지금도 광장 주변에는 예쁜 집들이 많다. 대부분 스페인 귀족들이 살던 집인데, 그들은 반라의 노예들이 광장을 끊임없이 돌고, 스페인 농장주들이 노예를 고르는 모습을 창문으로 구경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 자체가 유희였을 것이다.
이런 사례를 증명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설령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근본적 비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전설이나 이야기가 생기고 전해져 내려오는 데에는 반드시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즉,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이야기가 나올 리 없다. 더군다나 스페인의 설탕 착취와 노예제도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야기의 신빙성을 따지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착취한 자들과 착취당한 자들의 후손이 섞여 살고, 또 그들이 가정을 이뤄서 낳은 후손이 어깨 겯고 살아가는 땅이 쿠바다. 하지만 현재가 그렇다고 과거에 저지른 죄까지 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야기는 전해지고 잘잘못은 가려져야 한다. 여행을 통해 배우고 자꾸 되새기게 되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