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26일 오전 9시48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도착했다. 구속 이후 다섯번째 소환이다. 전날에도 특검에 나와 7시간 넘게 조사를 받은 그는 '여전히 뇌물공여 혐의를 부인하는지' '심경이 어떤지' 등을 묻는 기자들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조사실로 향했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최순실씨 일가에 430억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 합병 이후 삼성 주식 매각 과정 등에서 청와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특검 판단이다. 이 부회장은 또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는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는 위증 혐의도 받고 있다.
수사기간 만료가 다가오는 만큼 특검은 이들의 공소장 작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날 조사 역시 이 부회장의 공소장 작성을 위한 보강조사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그러나 여전히 "부정한 청탁이나 어떤 대가가 없었고 강요에 못 이겨 돈을 줬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함께 피의자로 입건한 최 실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황성수 스포츠기획팀장 전무 등은 불구속 기소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특검은 전날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소환조사했다. 김 회장은 최씨의 독일 인맥으로 알려진 이상화 KEB 하나은행 글로벌영업2본부장에게 인사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본부장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는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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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에게 특혜를 제공할 당시 이 본부장은 당시 하나은행 독일법인장이었다. 이 본부장은 지난해 1월 독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삼성타운 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가, 직후인 2월 글로벌영업2본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당시 정기 인사 시기도 아닌데다 기존에 있던 글로벌영업본부가 둘로 쪼개지면서 생긴 자리에 난 단독 발령이었다. 이 때문에 인사가 나던 당시에도 특혜 논란이 일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도움을 준 이 본부장을 챙겨주기 위해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9시간에 걸친 조사에서 특검은 최씨나 박 대통령의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캐물었다. 김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지만, 인사는 이와 상관없이 이뤄졌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또 전날 최씨를 재소환해 국내에 보유한 총 재산 규모와 재산 은닉 여부 등을 조사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최씨의 재산 형성 과정에 관여한 부분이 있는지도 살피고 있으며 '비선 진료'에 연루된 이영선 행정관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 관계자는 "수사 마무리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