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안전무지증 아내, 안전불감증 엄마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2017.02.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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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안전무지증 아내, 안전불감증 엄마


“만약에 불이 나면 우리 집 베란다 벽을 뚫고 옆집으로 피할 수 있어.” “에이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콘트리트 벽을 어떻게 부셔.”

신혼 초 남편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남편은 남들보다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편이다. “유난스럽다”는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소화기 2개를 주문해 베란다와 출입문에 두더니, 지난해 9·12 지진 발생 이후에는 통조림과 휴대 손전등을 넣은 ‘비상용 반출 가방’도 마련했다.



반면 필자인 기자는 안전에 매우 둔감한 편이었다. 남편이 아니었더라면 아파트 베란다마다 비상용 경량 칸막이가 있는 줄 몰랐을 거다. 벽 쪽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소위 ‘베란다 공사’를 해 구조를 바꾸면 위험을 자처하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필자가 안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를 낳게 되면서부터다. 정수기(온수 안전장치), 카시트 등 생활 속 위험요소와 부딪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안전 인지율이 현격하게 낮다는 것은 각종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지난 7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젠더리뷰’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2025명을 대상으로 재난 안전에 대한 인식과 태도, 교육훈련 경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마트·병원 등 다중이용시설, 집안, 교통수단 등 모든 상황에서 여성 1인 가구의 인지율이 가장 낮았다.

재난에 대비해 가정 내 비상용품을 준비한다는 응답도 여성 1인 가구가 16.3%로 가장 낮았다. 반면 혼자 사는 남성의 35.6%가 비상용품을 갖춰놓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위험 인지율이 낮은 이유로 재난 관련 교육·훈련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점을 꼽는다. 민방위 훈련 등에 참여하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이 교육받을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 미국의 경우, 국민의 78%가 시민방재군 등에 소속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능동적으로 안전 역량을 키우는 자세도 필요하다. 자기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는 ‘자율 안전’ 개념은 이미 선진국에서 정착된지 오래다. 안전사고는 늘 예고 없이 발생한다. 지하철 사고, 아파트·빌딩 화재 등 대형 사고는 매년 되풀이된다. 기본적인 재난대처능력을 갖추는 건 ‘인재(人災) 국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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