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설 연휴 끝났다" 명절이 더 서러웠던 청춘들

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2017.01.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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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로, 수험 공부로, 아르바이트로, 고향 못간 2030…쓸쓸한 명절나기

설 연휴 직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한 고시학원. 복도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공부에 여념이 없다./ 사진제공=뉴스1설 연휴 직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한 고시학원. 복도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공부에 여념이 없다./ 사진제공=뉴스1


"합격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이대로는 고향 못 내려갑니다."

올해로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 3년차에 접어든 허재윤씨(28). 2015년 9월 노량진 학원가에 입성한 후에도 매번 명절에는 고향 대구로 내려갔지만 이번 설에는 나 홀로 서울에 남았다. 지난해 7·9급 공무원시험에 모두 낙방한 탓에 부모님을 마주할 낯이 없어서다.

허씨는 "태어나 처음 혼자 맞은 설 명절"이라며 "적응이 안 되긴 하지만 금의환향을 생각하면 이 정도 쓸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절이 서러운 청년들이 많다. 설 연휴에도 불구하고 취업 준비로, 각종 시험 공부로, 먼발치에서 고향을 그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고향에 못 가는 이유는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왠지 모르게 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는 청춘들은 쓸쓸히 명절을 마감했다.

허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서울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4년째 취업준비생(취준생) 신분인 30대 고모씨에게 명절은 그저 사치다. 부산 고향 집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긴커녕 죄송해서 안부 전화도 못할 처지다.



만날 사람도 없다. 주변 대학 동기들은 상당수가 직장인이고 취업 스터디 동료들은 3~4살 어린 동생들이다.

고씨는 "어린 동생들이 한심하게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명절에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얘기조차 못 꺼냈다"며 "올해 설에도 홀로 도서관 신세만 졌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수험생 등 '혼밥족'이 컵밥으로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설 연휴를 이틀 앞둔 2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수험생 등 '혼밥족'이 컵밥으로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서울 한 사립대 로스쿨에 다니는 이민혜씨(27·여)는 고향이 가까운 경기도 수원이지만 올해 설 명절은 혼자 지냈다. 3주 전쯤 치른 변호사 시험에서 제 실력을 펼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설 당일에라도 집에 내려오라고 부모님이 권유했지만 이씨는 극구 거절했다. "덕담인 양 물어보는 친척들의 호기심이 눈칫밥보다 더 무섭다"고 이씨는 말했다.

설 명절이 서러운 건 아르바이트생(알바생)도 마찬가지다.



서울 관악구 한 편의점에 근무 중인 알바생 최중호씨(27)는 "공시생이라 애초 고향에 내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명절 동안 손님도 없이 휑한 편의점을 밤낮으로 지키려니 서글픈 마음이 평소보다 더 컸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알바몬'이 알바생 10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10명 중 6명이 '올 설 연휴에도 출근한다'고 답했다. 쉬지 못하는 이유로는 '연휴에도 매장이 정상 영업을 해서'가 전체 33.9%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한 푼이 아쉬워서'가 28.7%로 2위에 올랐다.

일부 취준생들은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설움을 명절 단기 알바로 풀기도 했다.



취준생 나명준씨(26)는 "설 연휴 동안 단기 배달 알바로 사흘간 20만원을 벌었다"며 "취업 준비에 알바까지 하면서 고향에는 내려가지 않을 명분이 생겨서 좋았다"고 말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난에 명절이 서러운 청춘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2016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15~29세)은 9.8%까지 치솟았다. 전체 공식 실업자(4주간 적극적 구직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를 못 찾은 사람) 수는 101만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체감 실업 규모는 더 크다. 공식 실업자 집계에서 빠져 있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쉬는 사람,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등을 모두 합치면 450만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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