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인에겐 죄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강소기업'의 나라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B사를 설립한 오너 2세이기도 하다. B사의 수많은 해외법인 중 한 곳인 A사를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어떠한 의전도 거부한 채 A사를 홀로 방문했다. 그리고 A사 대표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가 업무를 마칠 때까지 사무실 앞 소파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국내 기업에서였다면 불가능했을 법한 이 광경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A사의 대표는 "독일 본사의 오너 일가는 절대 회사에서 자신들만의 특권을 내세우지 않는다"며 "회사는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철저한 신념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한 우리 사회의 관대함이 자리한다. "그래도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되는 기업이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온정주의와 성장제일주의 오류에 빠져 이들의 잘못을 엄단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쁜 과정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자국 경제의 큰 역할을 담당하는 거대 기업이라도 잘못이 발각됐을 때는 수 조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잘못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문화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