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싸부' - 전국의 부장들께

머니투데이 신혜선 VIP뉴스부장 2017.01.19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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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낭만을 성공한' 김싸부의 자격과 반성문

우리에게 필요한 '싸부' - 전국의 부장들께


후반부에 챙겨본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이하 '김싸부', 억양을 넣어야 제맛이라)가 끝났다. 도윤완 원장(최진호 분)이 출세욕에 눈이 멀어 ‘의사선생’ 대신 ‘의사사장’이 되기 위해 비윤리적인 짓을 하다가 막판에 실권자 앞에서 자기 죄를 이실직고하며(김싸부가 일러바친 줄 알고 시쳇말로 자진 납세하는) 제 무덤을 파는 고소한 장면을 끝으로 닥터는 '낭만을 이뤘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읽은 키워드는 ‘싸부의 요건과 자세’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달군 글을 떠올린다. 맛깔 나는 글쓰기로 유명하신, 매번 즐겁게 찾아 읽는 문유석 판사의 칼럼이다.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한마디로 ‘꼰대 짓 하지 말라’는 충고가 어찌도 팍팍 와닿는지, 키득거리면서 읽었다.



나는 올해로 부장 7년 차다. 부장 아닌 모든 이가 열광하고, 부장 다수도 맞다고 무릎을 치니 체크에 들어갈 수밖에.

# 체크1. ‘돈 있는 후배들 시간 뺏는 저녁회식?’ 월 1회로 바꾼 건 부장이 되자마자다. 주 1회 정기회의를 하지만 선약 있는 기자는 빠져도 된다는 원칙을 공지. 다 ‘도망’ 가고 나 포함 성원 셋이면(여간 친하지 않으면 둘만도 부담일 거다) 간단 밥, 내가 약속이 있을라치면 카드 주고 빠진다. (내가 낄 때보다 숫자가 만만치 않게 많다는 것도 진작 알았다.) “우리 너무 회식이 없는 거 아닌가요?”라는 후배도 있었지만 꼬임에 안 넘어갔다. 그러니 자신 있게 통과. 여기서 한마디, “나도 내 돈 내고 내 시간 뺏긴다.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는 자리 만들 생각 없소이다.”



# 체크2. ‘내가 누군지 알아?’ 아휴, 내세울 거 없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걸 왜 후배들에게 묻나. 진짜 쌍팔년도 부장 얘기 아닌가. 이건 조건이 안돼 무사통과.

# 체크 3. ‘개떡같이 말하고 찰떡같이 알아들을 것을 바라지 말라.’ 고민 시작이다. ‘개떡’같이 말하고 “앗, 나의 실수”라고 한 적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진짜 그것도 못 알아듣나?’ 하는 경우는 더 엄청나다. ‘진짜 부장이 개떡같이 말해서일까?’ 찰떡같이 말해도 못 알아듣는 귀 어두운 ‘후배님’들이여, 나 좀 살려주세요. 여하튼 불통 하나가 시작된다.

# 체크 4. ‘우리 때는 말이야…’. 종종 한다. 왜? 우리 때 기자질을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특종을 날렸는지, 어떻게 오보를 날렸는지, 어떻게 깨졌는지, 어떻게 상사를 들이받았는지, 어떻게 부끄러웠는지, 어떤 실수를 하고 속상해하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발버둥쳤는지, 나는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해야 한다. 업무의 변화, 취재 환경의 변화는 후배들만 겪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만난 취재원들이 지금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들이다. 그러니 공유해야 한다. 물론 ‘우리때는말야부장’을 별명으로 달고 살진 않았다. 여하튼 불통, 둘.


# 체크 5. ‘실수를 알려주되 잔소리를 덧붙이지 마라.’ 부장이 처음 됐을 때 인생 선배로부터 받은 조언 중 하나가 ‘리더가 되면 실수 앞에서 꾸중과 화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였다. 즉, 잘못에 대해 꾸짖되 너의 감정, 화를 싣지 말라는 충고다. 그럼에도 종종 화가 났다. 업무 진도가 이미 나갔어야 하는데 후배의 실수나 미완성으로 다시 공을 들여야 할 때, 이미 여러 번 참았으니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개선 없는 모습, 이해불가인 행동 앞에서 내가 왜 성인군자가 돼야 하는 거지? 반대로 화가 아닌 꾸중 앞에서 오히려 자존심을 다쳤다고 생각하는 미성숙 후배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다만 ‘뇌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느냐’라든지 ‘엄니도 니 낳고 미역국 드셨을 텐데’와 같은 인격모독의 발언을 한 적은 없다. ‘생각 좀 하고 살자’ ‘어찌 그리 말귀를 못 알아듣니’ ‘니 몇 년 차냐?’ ‘기자는 말야’ 정도는 지금도 한다. 이 후자의 발언들도 충분히 잔소리인가. 오케이, 불통 셋이다.

# 체크 6. ‘망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하려면 이미 뭔가를 망치고 있는 이들에게 하라.’ 일단 불통 넷 주고 간다. 뭔가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을 향해 일갈하는 편이다. 해서 나보다 더 높은 분으로부터 “무던히 사세요”라는 충고를 듣거나 “조금 더 겸손하면 좋겠네”라는, 실은 위험한 지적을 받고 산다. 그렇다고 해서 체크 4를 포함해 후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라는 말보다 많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이것도 불통이다.

6가지 중 4개가 불통이니 맙소사, 내가 ‘꼰대 부장’이다. 여기서 드는 고민이 있다. 후배들은 도대체 어디서 업무요령을 터득하고 어디서 자신의 행동과 말과 역량을 평가받을까. ABC로 나누는 인사고과? 덕담하듯 하는 지적질? 나무라지 않고 칭찬 일색인 타 언론사 선배로부터? 업계 임원으로부터 쏟아지는 칭찬을 통해? 책에서(책도 안 읽는다.) 아님 스스로? 후배들이여, 하나는 알고 가자. 그런 관계에서 당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아픈 말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부장들은 언제부터인지 후배 눈치를 본다. “얘기해서 뭐해, 입만 아프게.” “그냥 둡시다. 지 인생.” “조직이 그냥 두는 걸 뭐 내가 어떡해.”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후배를 아끼지 않는 무책임한 상사?

김싸부로 돌아가자. 김싸부는 설명하지 않고 무시할 때도, 불같이 화를 낼 때도 꽤 자주 있다. 여주인공이 자살을 시도했을 땐 의사로 자격이 없다고 무섭게 혼내며 병실을 나가라고 명령한다. 다만,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 앞에서는 “괜찮아. 천천히 해”라며 격려한다. 기다려준다. 지나는 말처럼 칭찬한다.

사실 김싸부의 낭만 완성은 그를 믿고 따르는 후배들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싸부는 ‘될 놈’들만 골랐다. 도 원장의 아들이 의사라는 직업 앞에 옳음과 그름을 고민하면서 선택하지 않았다면 결코 '김싸부'의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회식을 하다가도 응급실 비상전화에 지시 없이 다들 일어나는 프로의 자세들. ‘똘기 충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서 진정한 ‘스승 싸부’가 된 김싸부 곁엔 자격 있는 후배들이 있었다.

사실 극중 김싸부는 ‘롤모델’ 삼기조차 버거운 사람이다. 욕쟁이, 비아냥거림, 혹독하고 무섭지만 닥터 김싸부의 힘은 탄탄한 실력과 더불어 의사로서 자존심과 명예, 타협하지 않는 정신, 아 ‘낭만’까지, 세 가지 요건에서 나온다. 이미 한 번의 큰 실수를 극복하고 다시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고 사는 삶의 태도는 ‘나는 기자로서 완벽한 실력을 갖췄나. 기자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으로 정론 직필하고 있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문 판사 글이 회자한 후 여러 부장급 이상 사람들과 만났다. 앞의 체크리스트에 각자 고해성사하며 깔깔거리거나 혹은 반성하는 분위기였다. 누구는 한숨을 쉬고 울분도 토했다. 도대체 부장은 뭘까?

우리에게 필요한 '싸부' - 전국의 부장들께
문 판사의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후배의 실수를 적당히 꾸짖고 회식을 포기한 부장은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전국의 부장들께 감히 말한다. 후배를 키우는데, 후배들을 혼내는데 두려움을 갖지 말자. 쓸 만한 후배를 키우는 것 역시 부장의 몫이다. 단, 내가 정체한 채로 후배를 키울 수는 없다. 문 판사의 금기고언 속에 숨은, 진짜 해야 할 행동을 찾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오늘을 고민하고 노력하는 부장들이라면 주눅 들지 말기를. 전국의 부장들이여 기운들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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