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보내는 건 기술이지만, 그 생각은 예술적 상상력"

머니투데이 이건혁 작가 2017.01.14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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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과학소설공모전 소백산 천문대 기행기]① '피코'의 이건혁 작가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주최한 제1회 과학소설공모전에 당선한 두 작가가 부상으로 주어진 소백산 천문대를 지난해 12월 10일 1박2일 일정으로 기행했다. 영하 15도 이상의 강추위에서 보는 풍경은 지구의 그것이 아닌 양, 신비롭고 다채로웠다. ‘피코’로 대상을 받은 이건혁 작가와 ‘네 번째 세계’로 가작을 수상한 이영인(필명) 작가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나선 ‘모험’의 길에서 체득한 소감과 양식이다. 두 작가가 과학적 상상력을 얻기 위해 이 기행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지식과 지혜를 얻었는지 체험기를 적었다. 과학소설의 미래는 현장에 있다는 걸 두 작가는 또렷한 메시지로 증명했다.

소백산 천문대에서 천체 관측이 가능한 날짜는 일 년 중 33% 내외라고 한다. 그만큼 맑은 날씨가 드물다는 뜻이다. 다행히 우리가 천문대를 방문한 날은 날씨가 무척 맑았다.

우린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해 단양에서 점심을 먹고, 택시를 잡아타 죽령 휴게소로 향했다. 죽령휴게소는 소백산 천문대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에 있다. 죽령휴게소부터 천문대까지는 약 7km의 등산로가 이어진다.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태양계 행성들의 모형이 드문드문 보이는데, 모형의 간격은 천문대에 가까워질수록 좁아진다. 천문대를 지구로 치고 각 행성의 상대적 위치를 축척에 맞게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천문대를 지나 연화봉까지 오르면 태양 모형도 만나볼 수 있다.



천문대는 해발 1450m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별보다 먼저 마주친 건 바로 '기압차'였다. 올라가는 동안 귀가 먹먹해져서 침을 몇 번이나 삼켰고, 아랫마을에서 가지고 올라간 과자 봉지는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어 올랐다. 안 그래도 봉지 안에 가득 차 있던 질소들이 낮은 기압을 만나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필자의 대장(大場)도 과자 봉지와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배속에 차있던 가스가 팽창하면서 대장이 요동을 쳤다. 처음엔 기압차 때문인지도 모르고 속이 좋지 않다고만 생각해 약을 먹으려고까지 했다. 함께 간 김창규 작가님께서 기압차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머무는 내내 방귀를 참느라 진을 뺄 뻔했다. 그만큼 기압의 위력은 대단했다.



기압 다음으로 마주친 건 바로 ‘정전기’였다. 기압은 여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낮은 기압 탓에 공기 중에 포함된 수분의 양이 저고도 지역보다 적다. 게다가 렌즈에 습기가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문대 내부에는 24시간 난방을 가동하고 있어서 사막처럼 공기가 건조하다.

소백산 천문대 성언창 박사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한여름에도 열흘 남짓을 제외하곤 항상 난방을 튼다고 한다. 그만큼 수분 관리에 철저하다. 덕분에 외투를 입고 벗을 때마다 따끔한 정전기에 시달려야 했고, 입술도 자꾸 말라서 립밤을 몇 번이고 덧발라야 했다.

단 하룻밤을 머물렀을 뿐이지만 천체를 관찰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만큼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기압차와 정전기로 인한 불편, 33% 확률로 맑은 날씨를 제외하고도 천체 관측을 방해하는 요소는 많았다. 근처 나무들에서 날아오는 꽃가루는 매년 2~3mm씩 망원경 렌즈 위로 쌓이고, 산 밑에 있는 시멘트 공장에서도 꾸준히 먼지가 날아온다. 아무래도 산 정상에 위치하다 보니 안개도 너무 자주 낀다.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우리 몸에 제일 좋다지만, 천체 관측에서만큼은 신토불이 정신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 땅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연구자로선 성능이 뛰어난 망원경을 들이고 싶어도 관측 환경이 받쳐주질 않아 섣불리 투자를 요구할 수도 없다.

그렇게 모든 난관을 뚫고, 오후 여덟 시가 조금 지나서 천문대 마당으로 나와 천체 관측을 시작했다. 비록 영하 15도의 강추위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날씨가 맑은 탓에 별이 꽤 많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천체를 관측한 적이 별로 없는 필자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이었는데, 달도 관측을 방해하는 주요소 중 하나다. 달이 너무 밝으면 그 빛에 다른 별이 가리기 때문이다. 그 날은 반달보다 조금 더 큰, 형광등 백만 개를 켜놓은 것 같은 달이 떴다. 결국 우리는 오리온자리와 달 표면 정도를 관찰하고 관측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이번 견학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우주를 제대로 보진 못했어도, 우주에 대해 맘껏 떠들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견학의 핵심은 함께 천문대를 방문한 심사위원님들과 나눈 긴 토론에 있었다. 우린 다섯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각종 주제를 넘나들며 기나긴 대화를 나눴다. 천문학, 광학, 달 탐사, SF소설, 정치, 역사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화가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모두 지면에 실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뇌리에 깊이 남은 이야기가 있다.

최근 민간 우주항공업체 스페이스X의 설립자인 엘론 머스크가 2022년까지 화성에 수백 명의 사람을 보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 인공위성 발사체도 갖지 못한 한국인으로선 부러울 따름이다.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보니 의문도 조금 생긴다. 왜 우린 저렇게 원대한 계획을 갖지 못한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자본도 부족하고 기술도 부족하며 관심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에겐 스토리가 없다. 미국만 하더라도 ‘칼 세이건’이라는 걸출한 작가이자 천문학자가 존재했다. 아이들은 그가 쓴 책을 읽고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진짜 천문학자가 되었으며, 일부는 SF 작가가 되었다. 인간을 화성에 보내는 건 고성능의 발사체겠지만, 올라갈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예술적 상상력이다. ‘마션’이나 ‘화성 침공’ 같은 영화를 보고 자란 과학자들은 화성에 가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

결국 우리는 첨단 기계와 함께 가슴 뛰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바나나와 우유를 함께 갈면 바나나 셰이크가 되지만, 천문학 지식과 인간의 상상력을 뒤섞는다고 ‘코스모스’ 같은 대작이 나오는 건 아니다. 혹시나 인공지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소백산 천문대에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이 열린다.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이는 워크숍 프로그램도 있고,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들이 명예 연구원 자격으로 상주하며 글을 쓰는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있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가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영감을 얻어 작업을 진행해왔다. 예술가의 머릿속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빅뱅처럼 뭔가가 폭발하면서 이야기가 탄생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오로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었다.

이번 견학을 계기로 필자에게도 소백산 천문대를 다시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이 생겼다. SF 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머니투데이와 소백산 천문대 성언창 박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더 많은 창작자가 소백산 천문대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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