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국현' 마리 관장, 지난 1년간 유일한 성과는 출판 담당자 채용?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6.12.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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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서 '전시 출판' 유독 강조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사진=뉴스1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사진=뉴스1


취임 1주년을 맞은 기자간담회에서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50)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내년 전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데 할애했다. ‘1년간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로 비쳐졌으나, 마리 관장은 “내년 프로그램은 이미 (부임하기 전부터) 확정된 것이어서 큐레이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최상의 전시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영감을 부여했다”고만 강조했다.

미술관 관장의 정체성은 큐레이터라고 강조해온 그간의 철학과는 달랐다. 내년 ‘전시 라인업’에서 그가 주로 강조해 온 사업들은 세계 무대를 중점에 둔 소위 ‘마리 프로젝트’ 들이었다. 한국근현대미술의 세계화를 위한 담론 연구 ‘MMCA 공공 프로그램’이나 고품질 한국미술 출판물의 기획 및 유통의 체계화를 모색한 ‘출판 프로그램’이 그것.



이 신규 사업인 ‘마리 프로젝트’에는 42억 원의 예산이 새로 편성됐고, 전시 예산으로는 15억 원이 증액됐다. 다시 말하면, 마리 관장이 부임해오면서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위해 필요한 사업으로 요구한 예산인 셈이다.

마리 관장은 이 ‘중점사업’을 시스템의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시스템의 혁신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우선으로 꼽고 자주 강조한 업무로 “출판담당자를 지정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한국 작가들의 세계화 진출에 도움이 되는 원동력은 출판에 있고, 이를 위해 출판 담당자를 지정한 것이 지난 1년간 시스템 혁신에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국현은 수많은 전시 도록을 출판하고 있는데, 해외 배급이 부족한 편이어서 이를 통해 한국 미술을 세계화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이런 품질을 향상하기 위해 도록의 배급을 담당하는 인사를 채용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마리 관장은 출판 채용 하나로 지난 1년을 설명하기엔 ‘너무 소극적 역할 아닌가’라는 질문에 “소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국현은 어떤 전시를 할지 단순하게 결정하지 않고 왜, 어떻게 등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나의 1년에 대해 가시적 성과가 없다는 식의 말도 있지만 혁신과 관련된 수많은 성과를 곧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년에 대한 그의 역할이 자신이 수없이 강조한 ‘큐레이터’로서 전시 안목이나 관장으로서의 스타일이나 색깔이 투영되는 식의 행보보다 확정된 전시 목록이라는 이유로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했다는 비판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조직의 체질 개선이나 조직을 아우르는 소통의 문제에서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게 제기돼 왔다.


마리 관장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핵심적 답변을 피한 채 “올해 과천관에서 진행된 전시는 동시대 작가들과 어떻게 협업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며 “출판 부분을 더 전문화하고 커뮤니케이션도 더 향상하겠다”고만 말했다.

최근 이지윤 국현 서울관 운영부장이 돌연 사직서를 제출해 과천관 학예연구실과 빚어진 알력이 사퇴 배경의 주요 원인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관장을 둘러싼 조직 내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마리 관장은 “모든 계약 사안에 대해 나는 다 같은 직원으로 동등하게 취급한다”며 “지난 1년간 서울관과 과천관 사이에서 협업하는 작업이 계속 이뤄졌고 학예 분야에서 갈등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4년 정형민 관장이 부당채용 혐의로 직위 해체된 후 1년간 관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이듬해 공모 절차를 거쳐 최종 후보에 오른 후보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갑자기 부적격 통보를 내리며 절차는 다시 원점에서 시작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차은택씨와의 인연이 깊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최종 후보에 오른 인사를 배제한 채 외국인 관장 임명을 강행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취임 1주년 맞은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마리 관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도록에 대한 출판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세계 진출에 힘을 더 쏟겠다"며 "서울관과 과천관 사이의 내부 갈등은 없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취임 1주년 맞은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마리 관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도록에 대한 출판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세계 진출에 힘을 더 쏟겠다"며 "서울관과 과천관 사이의 내부 갈등은 없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마리 관장은 취임 초기에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관장 재직 시 큐레이터를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렀다. 당시 그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문건을 공개하겠다고 발언했지만, 관련 문서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자격 시비’ 논쟁이 커졌다.

마리 관장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지난 1년간 전시 도록 출품에 힘을 쏟았다는 그는 2018년 임기를 마칠 때 즈음, 자신이 기획한 ‘피카소 전시’를 비로소 선보일 예정이다.

취임 당시, 그는 “네덜란드어도 1년 안에 배워 작가와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었다. 한국어도 작가와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배우겠다”고 했는데, 이날 간담회에선 “양해 말씀을 구해야겠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마리 관장을 임명하면서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관장에 재직하면서 탁월한 미술관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끌어올리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마리 관장은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 “개인적 목표는 세계화 전에 아시아 내에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뉴스&팩트]'국현' 마리 관장, 지난 1년간 유일한 성과는 출판 담당자 채용?
역할의 불명확성, 조직 인사 장악력 부재, 소통 실패, 말 바꾸기 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평단과 일부 미술계 인사들의 비판도 거세다. 미술계 유력잡지인 월간미술은 12월 최신호에서 편집장의 글을 통해 “마리씨는 그 자리를 내려놓고 고국으로 돌아가시라”며 “그게 바로 진정으로 한국미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마리 관장은 이에 대해 “사퇴는 내 개인적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퇴진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내년 예산은 전년도 대비 45% 증가한 724억 원이 배정됐다. 이 가운데 2018년 준공되는 청주관이 올해 40억 원에서 154억 원이 추가 확보됐고, ‘마리 프로젝트’에 57억 원이 증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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