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보내준 위로 보답하고파"…'세월호 엄마', 연극배우 된 이유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6.12.0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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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세월호 ④] 극단 '노란리본', 12월 경기도미술관, 은평구 등에서 공연 이어가

편집자주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한 국정농단 사태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여러 의혹도 포함된다. ‘탄핵소추안’에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헌법의 생명권 보장조항을 위반했단 내용이 분명하게 명시됐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가 다시 커지는 가운데 지난 9월 강제 해산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를 다시 출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이 모여 꾸린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모습/ 사진제공=극단 '노란리본'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이 모여 꾸린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모습/ 사진제공=극단 '노란리본'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이 모여 꾸린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모습/ 사진제공=극단 '노란리본'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이 모여 꾸린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모습/ 사진제공=극단 '노란리본'
대본은 색이 바래다 못해 너덜너덜했다. 수개월을 손에 쥐고 연습한 탓에 가장자리는 찢기고 모서리는 구겨졌다. 대사 사이사이에는 연필로, 볼펜으로, 다시 색연필로 꼼꼼히 적은 메모가 빼곡했다. 영 입에 안 붙는 대사는 자연스럽게 고치고 지문에 담기지 않은 동작은 따로 기록했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영만 엄마(이미경)는 "이제는 대사를 다 외워서 괜찮다"며 선뜻 대본을 건넸다. 첫 장의 '영만 맘(mom)꺼'란 커다란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영만엄마(이미경)의 대본. 수십번 연습하며 빼곡히 채워넣은 메모가 눈에 띈다. /사진제공=이미경영만엄마(이미경)의 대본. 수십번 연습하며 빼곡히 채워넣은 메모가 눈에 띈다. /사진제공=이미경


영만 엄마가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오세혁 작·김태현 연출) 대본을 처음 손에 쥔 건 초여름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리 치유를 담당하는 안산온마음센터에서 만난 엄마들 서넛이 연극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8명의 엄마가 모였다. 영만 엄마, 수인 엄마(김명임), 동수 엄마(김춘자), 예진 엄마(박유신), 애진 엄마(김순덕), 동혁 엄마(김성실), 주현 엄마(김정애), 시찬 엄마(오순이)다. 무더위가 채 몰려오기 전인 6월, 8명을 중심으로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정식창단한다.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은 평생 작업복을 바꿔입으며 살아온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풍자로 유쾌하게 담아낸 코믹 옴니버스극이다. 둘도 없는 친구와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아파트 경비원 강호남과 김영광, 파업현장에 나갔다가 막내 아들이 '용역깡패'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심, 장기투쟁을 하는 '사랑전자'의 노조위원장 심순애에게 반한 수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극은 평범한 우리네 가정의 이야기예요.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세월호 이야기도 조금씩 집어넣고 하면서 만들어졌죠."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연습 모습. (왼쪽부터) 동수엄마 김춘자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영만엄마 이미경씨 / 사진제공=이미경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연습 모습. (왼쪽부터) 동수엄마 김춘자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영만엄마 이미경씨 / 사진제공=이미경
처음엔 그저 대본읽기에 가까웠다. 매 주 월요일 오후 2시간씩 모였다. 극단 '걸판'의 김태현 연출과 만나 발성을 배우고 동선을 익히며 장면을 하나씩 완성해갔다. 7월, 시범공연으로 무대에 처음 올랐다. "그 때는 엄청 미숙했죠. 연극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단 25분의 공연,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100여명 가까이 모인 관객의 반응은 썩 괜찮았다. 용기를 냈다. 3달의 연습을 거쳤다. 극단 '노란리본'은 지난 10월 안산시청소년수련관, 11월 대학로에서 연이어 공연을 올렸다.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연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대본도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대사를 못외우면 너무 망신이잖아요. 대사를 겨우겨우 외우고 나니 이번엔 상황이 잘 안 그려져서 고생을 많이 했죠. '라디오극장'처럼 말로는 너무 잘하는데 행동은 안 되는 거예요. (웃음)"

회를 거듭하며 엄마들의 연기는 꽤 능청스러워졌다. 긴 대사를 읊으면서 마임을 선보이기도 하고, 액션연기나 독백도 썩 그럴 듯하게 소화한다. 관객석에선 연신 웃음이 터진다.

익살스러운 대사가 많지만 유독 마음을 콕콕 찌르는 문장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도 우리 애들은 잘 살아야죠.", "가족이 가족 생각하는게 잘못됐소, 시방?", "매일 싸우러 와주는데 전혀 해결이 안된게 지겹지 않아요?"

따로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지만 모두가 의미를 공유한다. 눈가가 이내 촉촉해진다. 영만 엄마는 무언가 목구멍에 꽉 막혀있다는 듯 손을 턱끝에 갖다댄다.

"(엄마들은) 항상 울음이 목까지 계속 차있어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풀 수가 없는 거예요. 한 번 씩 주기적으로 울어줘야 후련해지는데 그러질 못했죠. (연극을 통해) 한 번도 안 해 본 걸 하잖아요. 연습하는 것 자체가 재미도 있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잠시나마 내면을 치유받는거죠."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연습 모습. 극 중 부부 역할로 나온 수인 엄마 김명임씨(왼쪽)와 영만엄마 이미경씨 / 사진제공=이미경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연습 모습. 극 중 부부 역할로 나온 수인 엄마 김명임씨(왼쪽)와 영만엄마 이미경씨 / 사진제공=이미경
연극연습을 할 때 만큼은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들은 또다른 계절의 흐름을 함께 견뎌냈다. 어느덧 참사 1000일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지만 매 순간, 모든 장소에서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다.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노라는 대사로나마 그리움을 달랜다.

"지금부터 세월호 진상규명 및 온전한 선체인양 및 특별법 개정 및 특조위 활동기한 연장 및 특조위 선체조사권 확보 및 노동행동 보장...뭐가 이렇게 많아~사랑전자 비정규직 노조 승리 위한 촛불문화제를 여러분의 힘찬 함성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中)

연극은 집회도, 단식도, 삭발도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시민들과 만나려는 세월호 엄마들의 도전이자 2년 넘게 기꺼이 연대해 준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감사의 표현이다.

"춘천에서, 전주에서 매일같이 광화문으로 피켓 시위를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저희가 지금까지 버티는 거죠. 다들 똑같이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세월호 진상규명)는 밝혀질 거라 믿어요. 사람들이 더 다치지 않도록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많이 힘들었습니다.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동지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극 중 장기투쟁을 하는 '순애'의 대사에선 함께해준 시민들에게 건네는 엄마들의 마음이 비친다.

엄마의 무대는 계속된다. 오는 11일 경기도미술관, 23일 충남 당진의 촛불집회, 29일 서울 은평구에서 차례로 공연을 올린다. 다음 달 4~5일은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마을에서, 7일엔 부산 촛불집회에서 배우로 무대에 오른다.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커튼콜 장면, 엄마들은 "끝까지 밝혀줄게"라는 피켓을 든다. / 사진제공=극단 '노란리본'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커튼콜 장면, 엄마들은 "끝까지 밝혀줄게"라는 피켓을 든다. / 사진제공=극단 '노란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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