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탄핵을 망치는가… 정치권, 불신의 소용돌이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16.12.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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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2일 탄핵소추안 처리 불발에 책임 떠넘기기

 참여연대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국민의 명령 거부하는 새누리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16.12.2/뉴스1  참여연대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국민의 명령 거부하는 새누리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16.12.2/뉴스1


"국민만 믿고 탄핵 가라!"

촛불을 든 국민들은 정치권에 신뢰를 보장했지만 정치권은 상호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수지만 차기 대선에 대한 셈법이 끼어들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악수를 두게 되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 대신 정치권이 죄수가 돼 다른 정당의 죄를 자백하며 자멸로 빠지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탄핵 동참? 못믿어, 아니 안믿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을 밀어붙이며 새누리당과 함께 국민의당을 코너로 몰아넣었다. 표면적으로는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한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가 사실은 탄핵할 의지가 없고 국민의당은 이들의 시간벌기에 동조하면서 탄핵 추진을 어렵게 한다는 것 아니냐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탄핵 대신 박 대통령의 4월 말 퇴진으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독으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를 만나 4월 말 퇴진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은 것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협상 여지를 차단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한발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이 의구심을 보이는 대목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박 대통령의 4월 말 퇴진을 빌미로 '제3지대' 정계개편을 노릴 가능성이다. 특히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 비주류 세력까지 손잡는 사실상 '반문(반 문재인) 지대'라는 시각이다.

더구나 여권 대선주자로 여겨지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누리당과 함께 주저앉는 대신 '제3지대' 후보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위협할 수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더불어민주당으로선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이든 비박이든 박 대통령과 함께 몰락하고 국민의당이 외연확장을 도모할 고리를 끊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조기 대선 위해 탄핵"

새누리당은 야당이 조기 대선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새누리당 참여 없이 부결될 것이 뻔한 탄핵을 시도하는 데에는 다른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탄핵안이 부결되면 새누리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을 향하던 성난 '촛불 민심'이 새누리당으로 고스란히 쏟아지게 될 것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탄핵 반대 명단을 공개하면서 새누리당 의원들에겐 벌써 국민들의 폭탄 문자가 날아들고 있다. 이대로 정권교체가 되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남은 임기 내내 탄핵 반대 '부역자'로 찍혀 정치적 회생이 어려워질 수 있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유력 대선주자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잠재적 경쟁자인 반기문 사무총장이 대선에 뛰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추미애 대표가 김무성 전 대표를 만나 박 대통령의 퇴진 시기를 1월 말로 못박은 것도 이 같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란 설명이다.

친박과 비박이 갈라서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서 내부 불신도 커지고 있다. 탄핵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던 김무성 전 대표가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개헌을 추진하려고 탄핵 추진에서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가 하면 친박계와 손잡고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누군지 불신에 불신이 거듭되고 있다.

◇국민의당 "민주당 함정에 빠졌나"

국민의당은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 새누리당 비박계를 기다리자고 주장했다가 졸지에 새누리당 부역자로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자 더불어민주당이 판 함정에 빠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측이 탄핵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뒤로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

더불어민주당이 '꽃놀이패'를 쥐고 조기 대선의 유불리에 따라 탄핵 카드를 이리저리 재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탄핵을 그르치게 돼도 더불어민주당은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는다고 여기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탄핵안을 쥐고 국민의당을 계속 흔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가 국민의당에는 상의 없이 김 전 대표와 만나 박 대통령의 퇴진 시기를 굳이 1월 말로 언급한 배경에도 주목하고 있다. 앞서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운운한 데 이어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퇴진 후 조기 대선 시기를 얼버무린 것 등도 의심스럽다는 분위기다.

탄핵 추진에 대한 당내 목소리도 통일되지 못하고 마구 엇갈리고 있다. 여기에 당 지도부 교체가 맞물려 탄핵 정국에서 자칫 엇박자가 날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권, 특히 야권이 '박 대통령은 이미 끝났다'는 전제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상호 불신과 불확실성으로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경우 역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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