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치매 노모와 64세 아들 "어여 죽어 하다가도…"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2016.12.0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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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낸 정성기씨… "'최후의 만찬' 각오로 노모 모시며 행복"

에세이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를 출간한 저자 60대 정성기(오른쪽)씨가 치매를 앓는 90대 노모인 전정금씨 입안에 캐러멜을 넣어 드리고 있다. /사진=김지훈 기자에세이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를 출간한 저자 60대 정성기(오른쪽)씨가 치매를 앓는 90대 노모인 전정금씨 입안에 캐러멜을 넣어 드리고 있다. /사진=김지훈 기자


경기도 부천의 복도식 아파트에 거주하는 정성기(64)씨는 인터뷰 도중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어했다. 그는 현관문을 열고 밖이 트인 아파트 복도로 나왔다. 찬 바람을 맞으며 담배 피울 때가 집 안에서 노모와 있을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서울에 오피스텔을 구해 사랑방처럼 쓰고 싶어요. 간병으로 못 만났던 사람들을 한 데 불러모은 다음 제가 만든 요리를 대접해 주고…."



정씨 모친인 전정금(91)씨가 금세 정씨를 부르는 외침이 들린다. 정씨는 "네 엄마, 저 가요"라며 황급히 담뱃불을 끄고 현관문을 다시 열었다. 치매를 앓는 노모는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불안해 진 것이다.
모친을 위해 새우 요리를 만드는 정성기씨. /사진=김지훈 기자모친을 위해 새우 요리를 만드는 정성기씨. /사진=김지훈 기자
엄마도 백발, 아들도 백발이다. 정씨는 10년 가까이 어머니를 돌본 간병기와 어머니를 위한 요리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헤이북스)를 출간했다. 그는 책 서문에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 아니다. 고통과 소진 속에서 절규하며 남기는 기록"이라고 썼다.

"어머니가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안 자고 '라이브 쇼'를 하는 날은 미쳐요. 옷을 다 벗거나, 바닥에 변을 보고 그대로 앉아 버리거나. 옆에 있는 사람은 잘 수도 없어요."



'내가 지금 짓는 밥이 어쩌면 어머니의 마지막 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밥을 지었다. 블로그 스머프 할배의 만화방(http://blog.naver.com/adcsk)을 운영하며 모친 간병과 음식 얘기를 다뤄 유명세를 탄 것이 출간으로 이어졌다. 요리 블로거의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으로 출발해 만든 요리 가짓수가 500여 가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노모를 위한 건강식에 대해 들려줬다.

아파트 복도에서 휴식을 취하는 정성기씨. /사진=김지훈 기자아파트 복도에서 휴식을 취하는 정성기씨. /사진=김지훈 기자
그는 어린 시절 가난으로 집을 떠나 입주 가정교사 생활을 했는데, 뒤늦게야 노모와 나름의 추억을 만들어간다고 했다. 뭉클할 때도 있다.

“어머니가 어쩌다 정신이 돌아오면 ‘아우 너무 고맙다’, ‘맛있다’ 해 줄 때도 있어요. 어머니가 지난번 되게 한 번 아프실 때가 있었는데 녹두죽을 해 드렸더니 기운을 차리시며 고맙다 하셨어요. 내가 당신 손 놓지 않도록 하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 있으신 것 같았죠."


91세 치매 노모와 64세 아들 "어여 죽어 하다가도…"
지난 1일 그의 집에서 만난 정씨는 노모를 위한 새우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부엌에서 새우를 다듬고, 양파를 잘라 작은 냄비에 넣고 국자로 이를 휘저었다. 그 옆 마루에서 노모가 두꺼운 털 양말을 신고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는 다른 가족과 떨어진 채 노모와 만 10년 가까이 한집에서 지냈다.

"어머니보다 먼저 치매를 앓던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로 노모의 간병을 도맡았어요. 제조업체 고문으로 있다가 간병에 전력투구키로 하면서 일도 그만뒀지요."

정씨는 4남 1녀 중 맏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준 밥상을 받았고, 결혼 후 아내가 지어준 밥을 먹었다. 라면 정도나 할 줄 알던 그가, 며느리도 맞춰 주지 못한 노모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춰 죽을 쑤고 국도 끓인다.

"어떤 땐 속으로 '어머니, 차라리 그 강을 건너세요', ‘어여 죽어’ 하고 속으로 외치다가, 막상 아프시면 응급실로 모시고 가며 발을 동동 구르니…."

잠자코 있던 어머니가 느닷없이 "추워라 추워라" 하고 외쳤다. 졸린 아들은 얘기하다 말고 달려가 보일러 온도를 높인 뒤 캐러멜을 어머니 입안에 넣어 드렸다. 아들은 그렇게 드실 수 있는 어머니를 보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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