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라로 발견된 정온의 관 안에 있던 그의 부인 양씨의 치마(좌), 치마에 새겨진 다라니경(우)./사진=다음 블로그
조선 중종 때 통례원 정5품 찬의를 지냈던 정온(1481~1538)은 그렇게 후손들을 만났다. 그는 성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제안공 정효상(1432~1481)의 2대손이었다.
정온의 시신은 국내에서 발견된 미라 중 가장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그의 시신이 밀폐된 관 안에서 오랫동안 진공 상태로 보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시신을 둘러싸고 있던 옷가지도 매장 당시의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시신을 둘러싼 7겹의 옷과 시신과 관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던 20여점의 비단, 정온이 신고 있던 신발까지 모두 온전했고 서로 붙어있지도 않았다.
옷가지 중에는 그의 부인 남원 양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적삼과 치마가 있었다. 적삼 앞쪽에는 보살상과 비천상, 다라니경이 찍혀있었다. 뒤쪽과 소매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치마에도 무릎 부분 네 군데에 다라니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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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관 속에 넣는 다라니경은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미가 있다. 원형대로 보존된 부인의 옷에는 남편의 명복을 비는 부인의 애절한 마음도 닳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듯 했다.
1995년 미라로 발견된 정온의 관 안에 있던 그의 부인 양씨의 적삼./사진=다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