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면 삼성은 그동안 2차례 ‘선언’이 그룹의 방향타를 본질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첫 번째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1983년 도쿄선언. 초대규모 집적회로 VLSI사업에 투자한다는 발표로 반도체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선언은 삼성의 경영이 양에서 질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주력 상품의 리콜사태라는 쇼크 속에 책임경영의 길에 오른 이재용 부회장은 어떤 선언으로 삼성의 변신을 주도해나갈까.
2013년 서울대 경영대 송재용과 이경묵 교수는 ‘SAMSUNG WAY’란 책에서 삼성이 보유한 경쟁력의 뿌리를 3가지로 정리했다. 대규모 조직이면서 스피디한데다 다각화와 수직적 계열화돼 있으면서도 전문화돼 있는 점, 그리고 평가와 보상 위주 미국식과 연공서열제 아래 화합을 추구하는 일본식 경영이 병존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이 체질화된 하드웨어적 강점에 새로운 소프트웨어적 변화를 접붙이는 게 삼성 앞에 주어진 과제다. 매년 하위 고과자 10%를 해고하며 실패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다 실패를 용인하는 것과 같은 ‘문화적 털갈이’를 하며 비즈니스모델 자체를 혁신한 GE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GE는 지금 ‘124년 된 스타트업’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 한 가지. 통상 얘기되는 스타트업 문화의 특징들은 ‘이상론’이라는 점이다. GE의 문화적 혁신을 자문한 ‘린스타트업’의 저자 에릭 리스는 기업가정신과 관리의 조화를 강조한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현실적 관리를 쓸데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다 사라졌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관리의 삼성’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다. 여기에 삼성 특유의 스타트업 문화를 접목하면 되는 것이다. 기존 자산까지 부정할 필요가 없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니체). 최근 리콜사태가 삼성을 강한 스타트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새 출발점이 되면 되는 것이다. ‘80년 된 스타트업 삼성’ 이게 이재용 부회장의 출사표에 들어갈 큰 맥점 중의 하나이자 새로운 리더십의 과녁이 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