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법에 영세 홍보영양사 피눈물…"범죄자 취급"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2016.10.27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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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 한달]'샘플=금품제공' 우려에 대면접촉 전면금지…대량 실직 위기

영란법에 영세 홍보영양사 피눈물…"범죄자 취급"


"김영란법 이후 홍보영양사 직업 자체가 범죄자나 잡상인 취급받고 있어요. 아예 직장을 잃은 사람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제대로 일을 못하는 상황입니다."

서울 한 영세 식품업체 소속 홍보영양사 김진영씨(27·가명)는 "너무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결정인데,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김씨는 현재 두달째 무급휴가 상태다. 김씨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부패나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홍보영양사들의 생계가 위기에 놓였다.

지난달 28일 전면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여파로 학교소속 영양사와 접촉이 금지되면서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법 시행 한달여를 앞둔 지난 8월25일 대책회의를 열고 '식품업체(공산품 등 식재료 취급)와 학교 간 대면접촉 홍보행위 원칙적 금지'를 결정했다. 각 시·도교육청은 일선 학교들에 이 같은 내용의 행정지침을 전달했다.

홍보영양사는 식품회사 소속으로 제품을 홍보·판촉하는 직원을 말한다. 풀무원, 오뚜기 등 식품 대기업은 물론 각 지방에서 'OO식품' 식으로 간판을 걸고 공장 한두 곳을 운영하는 중소형업체들도 홍보영양사를 두고 있다.

교육부는 홍보영양사가 학교 영양사에게 샘플로 제공하는 식재료를 문제삼았다. 이 샘플에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김영란법 저촉 가능성을 우려했다.


교육부의 조치는 전국 약 1000명(업계 추산)에 달하는 홍보영양사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식재료를 납품하기 위해 샘플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제품을 홍보할 만한 수단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군소 업체들은 샘플로 '검증'을 받아가며 판로를 개척해왔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기존에 영업망을 확보한 제품 외에는 신제품 등을 홍보할 길이 막혔다. 영세업체들은 홍보 통로가 아예 차단됐다고 여긴다.

홍보영양사들은 최근 집단행동에 나섰다. 홍보영양사들은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등에 대면홍보금지 방침 전면철회를 요구했다.

이달 10일에는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국무조정실과 교육부를 상대로 "홍보영양사의 생존권을 지켜 달라"며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 청원에는 25일 오후 5시까지 2508명이 서명했다. 보름 만에 목표 인원 2500명을 채웠다.

청원문에서 홍보영양사들은 "일부 대기업의 비리가 빌미가 된 '대면홍보 금지'라는 정부 지침이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며 "홍보영양사들의 생존권이 박탈됐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한 중견 식품업체의 최근 두 달 매출은 교육부 행정지침이 전달되기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일부 영세 업체는 이미 회사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중소식품업체 홍보영양사는 "학교 10곳을 찾아가면 6~7곳에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나머지 3~4곳에서는 설명만 들어준다"며 "우편으로 홍보자료를 보내라고 하는데 샘플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지 않고서는 대기업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영양사는 "주변 홍보영양사들 대부분이 일을 그만두거나 강제 무급휴가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홍보영양사는 "실제로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만 처벌하면 되는데 홍보영양사 모두 단체로 처벌을 받고 있는 셈"이라며 "교육부에서 다시 정정 공문을 내리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교육부 등 관련 당국은 적어도 올해까지는 '대면접촉 원칙적 금지' 방침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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