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서초]말 없이 죽은 아내…그날밤 무슨 일이 있었나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2016.10.0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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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②'거짓말탐지기' 과학수사로 찾아낸 거짓말…자해일까 폭행일까

편집자주 모든 사건현장에서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단지 그 흔적을 찾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되는 만큼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수사 기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증거물이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증거물 수집, 분석 등이 필요합니다. 과학수사를 통해 해결한 사건을 짚어보며 어떤 기법이 활용됐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새벽 5시30분. 적십자병원 응급실에 서른살 여성이 실려왔다. 여성의 심장은 이미 멈춰있었다. 응급조치 끝에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의식을 찾지는 못했다. 두 차례 더 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0여일 후 결국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사망 원인은 다발성 장기기능 부전 및 중증 뇌좌상, 외상성 뇌경막하 출혈. 여성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뇌가 왼쪽으로 치우칠 정도로 다쳐 출혈이 심해 이미 뇌사 상태였다. 특히 갈비뼈 12개 중 10개가 부스러지듯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는데 온 몸에는 멍이 들어 원래 살색을 알기도 힘들 정도였다.



여성을 119에 신고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여성이 병원으로 실려 오기 직전까지 20여 시간을 함께 있었다. 당연히 수사의 초점은 남편에게 맞춰졌다. 남편은 아내가 자해를 하다 넘어져 뇌를 다쳤고, 갈비뼈는 심폐소생술을 하다 부러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날 밤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편의 말은 사실일까.



갈비뼈 12개 중 10개 으스러졌지만…증거가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부검 결과는 남편의 말과 달랐다. 심폐소생술로 갈비뼈가 부러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소견을 냈다.

[CSI: 서초]말 없이 죽은 아내…그날밤 무슨 일이 있었나
갈비뼈 12개 중 10개가 부러졌는데, 각 갈비뼈들은 여러 조각으로 부러져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다 부러졌다면 뼈들이 한 방향으로 부러져있어야 했다. 또 거의 등쪽에 위치한 갈비뼈 9번과 12번도 부러졌는데 심폐소생술로 등 쪽의 갈비뼈가 부러질 이유는 없다. 국과수는 "여러 방향에서 가해져오는 강한 외부적 충격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뇌출혈 정도도 단순 자해로 볼 수준은 넘어섰다고 봤다. 뇌가 한 쪽으로 치우칠 정도도 충격을 받아, 응급실에 실려갔을 당시 이미 뇌사 상태였고 곧바로 괴사가 진행됐다.

아내의 몸은 남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증거가 없었다. 가정폭력의 특성상 으레 그렇듯 경찰은 남에 가정사로 치부했다. 아내가 다쳤으니 조사가 필요하다고 남편에게 통보는 했지만, 현장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병원에 실려온 아내가 20여일간 죽음과 싸울 동안, 남편은 집에서 생활하며 경찰 조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사이 남편은 집을 청소했고, 버릴 것은 버리고 치울 것은 치웠다. 사건 현장에서 증거는 그렇게 사라졌다. 집 안에서 일어난 일에 목격자는 없었다.

거짓말탐지기·행동분석 결과 "발로 밟아서…" 범행 형태까지 알아내

"싸우긴 했는데 뺨 두 대 정도 때렸어요. 허벅지랑 팔도 조금 때리기는 했는데 그게 다였어요. 와이프가 원래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었는데 갑자기 자해를 하더라고요. 그날도 화가났는지 혼자서 날뛰다 쓰러졌는데 하필 대리석으로 된 식탁으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어요. 안일어나더라고요. 놀라서 신고를 하고 심폐소생술을 했죠. 진짜 제가 때려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니까요."

대검찰청 과학수사1과 심리·행동분석관 앞에 앉은 남편은 그날 상황을 막힘없이 말했다. 분석의 쟁점은 아내를 사망하게 한 '외부충격'이 남편의 폭행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밝혀내는 일. 검찰은 통합심리분석을 의뢰했다. 통합심리분석은 심리생리검사와 행동분석, 임상심리평가로 이뤄지는데, 남편에게는 심리생리검사와 행동분석이 실시됐다.

담당분석관의 이어지는 질문에 남편은 몇번이고 자신은 폭행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수사와 관련된 질문부터 상관없는 일상적인 질문까지 수십여개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와중에 남편의 표정과 신체에 미세한 변화가 포착됐다.

"아내를 발로 밟았나요?"

담당분석관은 분석 결과 "남편의 피해자 머리 골절 등은 자해로 인한 것이고 늑골 골절 등은 심폐소생술로 인한 것이라는 진술은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발로 피해자를 마구 밟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특정 행위까지 분석해냈다.

흔히 '거짓말탐지기'로 불리는 심리생리검사는 호흡과 피부전도도, 혈압, 맥박 등 조사 대상자의 자율신경계 반응 변화를 통해 진술의 진위를 파악하는 검사다. 행동분석은 분석관과 범인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2시간 정도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중간에 탁자나 책상은 두지 않는다. 분석관은 면담을 하며 조사 대상자의 미세한 표정이나 행동변화, 눈동자의 움직임, 손끝이나 발끝의 움직임 등에서 단서를 포착해 낸다.

대검찰청 심리분석관이 심리분석실에서 심리생리검사를 재현하는 모습. 조사 대상자의 가슴과 배, 손가락 등에 분석 도구를 채우고 검사를 진행한다. 의자에는 센서가 있어서 전신의 미세한 움직임도 기록된다./사진=김미애 기자 박보희 기자대검찰청 심리분석관이 심리분석실에서 심리생리검사를 재현하는 모습. 조사 대상자의 가슴과 배, 손가락 등에 분석 도구를 채우고 검사를 진행한다. 의자에는 센서가 있어서 전신의 미세한 움직임도 기록된다./사진=김미애 기자 박보희 기자
최종 결과는 이 둘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내린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맥박이 빨라졌다거나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나 피부전도도가 높아졌다는 단편적인 사실로 거짓과 진실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분석해 내는지는 일종의 영업 비밀이다. 범인이 이를 미리 알고 준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철저한 비밀에 부치고 있다.

통합심리분석 결과는 재판에서 직접적인 증거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정황 증거로 활용된다. 특히 명백한 물증이 없을 때 다른 정황증거에 힘을 실어주고, 피고인 진술의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범인이 자백을 한 사건 500여건의 샘플을 뽑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확도는 96%에 이른다.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은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때렸다' '아내가 수천만원을 주고 마약을 사서 추궁하다가 때렸다' '아내가 마약을 하고 자해를 했다'며 말을 바꿔가며 변명을 이어갔다.

법원은 물증과 목격자도 없는 사건이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와 통합심리분석검사 결과를 토대로 남편이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데다 고인의 가족으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했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남편이 저지른 상해치사의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 범위는 징역 3년에서 10년 6개월. 아내를 죽이고도 뉘우치지 않은 남편은 결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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