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버린 4대법인 …젊은 회계사들 '사표' 행렬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백지수 기자 2016.09.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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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후하박 보수, 스트레스에" 1년 이상~10년 미만 회계사 비중 5년새 8.2%↓…"을 싫다" 감사본부 외면 풍조도

늙어버린 4대법인 …젊은 회계사들 '사표' 행렬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의 주름살이 급격히 늘고 있다. 분식회계 검증실패 논란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는데다 젊은 회계사들의 이직 행렬도 이어지면서 실제로 늙어가는 것이다. 특히 경력 1~10년, 현장 업무를 도맡아야 할 회계사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백을 신입 회계사들로 채우고 있지만, 이들조차 얼마 버티지 못하는 추세다. 기대 이하의 보수, 강도 높은 업무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탓이다.

19일 회계법인 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4대 법인에 소속된 경력 1년 이상 10년 미만 회계사는 총 3252명으로 전체 회계사의 64.6%를 차지했다. 5년 전인 2011년 3월, 같은 경력 회계사의 숫자가 3509명(72.8%)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인원은 물론 비중도 크게 줄었다. 특히 이들이 사내 '허리' 연차로 실무를 도맡는 인력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최근 5년새 4대 법인에서 1년 이상~3년 미만 경력의 회계사 비중은 3.3%포인트(p), 3년 이상~5년 미만은 2.5%p, 5년 이상~10년 미만 회계사는 2.6%p 감소했다. 반대로 10년 이상~15년 미만 경력의 회계사는 4.5%p, 15년 이상은 1.8%p 늘었다. '한창 일할 나이'의 30대 회계사들이 사라지면서 인력구조가 '항아리형'에서, '호리병형'으로 변화가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1~10년차 줄고, 신입·시니어 늘고…4대법인 인력구조 '항아리→호리병'=치열해진 경쟁,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 갈수록 적어지는 보수 등이 4대 법인의 인기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우선 '상후하박' 보수 구조와 반대로 '낮은 연차에게 업무가 몰린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회사 지분을 보유한 파트너(임원)급 임원들은 월급과 더불어 출자율에 따른 배당을 챙기지만, 젊은 회계사들은 주요 대기업들의 비슷한 연차와 '차이가 없다'는 평가다. 실제 4대 법인 신입 회계사의 연봉은 4000만원대로, 주요 대기업들은 물론 금융권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반면 주요 법인의 대표급 임원들 중에선 수십억원의 보수를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도 타 직종보다 보수가 월등하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는데, 수년간 연봉 인상율이 제 자리에 머물면서 '고생은 내가 하고, 성과는 윗분들이 챙긴다'는 불신이 커졌다"고 전했다.

◇'을 되기 싫다'…외면당하는 감사본부=그나마 법인에 몸담고 있는 회계사들 사이에서도 감사업무를 꺼리고 M&A(인수·합병) 등을 담당하는 딜(재무자문) 또는 세무 업무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자율수임제' 도입 후 감사 본부 소속 회계사가 오히려 피감기업 눈치를 봐야 하는 탓이다. 특히 대형법인들은 신입 회계사들을 주로 감사본부에 배치해 업무를 익히도록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을'의 한계에 염증을 느낀 젊은 회계사들이 직장을 등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형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한 2년차 회계사 A씨(28)는 "비슷한 연차 회계사들 중에서는 같은 법인 감사본부에서 세무나 딜 본부로 옮길 수 없다면 아예 퇴사해서 금융감독원 등 금융기관 입사시험을 다시 치르거나 다른 회계법인 신입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며 "감사 업무는 일도 많고 비전이 없다는 인식이 젊은 회계사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한 4대 회계법인 관계자는 "각 본부의 인원 절대치는 매년 비슷하다"면서도 "다만 회계법인 내부적으로도 딜 본부나 세무 본부는 감사본부에 비해 인기가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입' 넘치는 감사본부…"감사품질 악화" 우려도=수년새 회계사들이 분식회계나 주가조작 등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휩쓸리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례처럼 자칫 치명적인 회계 오류 사건에 휩쓸리게 되면 직장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덜 벌어도 스트레스가 적고 안정적인 곳'을 찾아 대형법인 퇴사 후 개인 사무실을 차리거나 공기업, 금융권, 일반 대기업 등으로 이직하는 회계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형 법인들은 신입 공채를 늘려 이들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2010년 620명이었던 경력 1년 미만 회계사는 2013년 826명까지 늘었다, 지난해도 745명으로, 5년 전보다 비중이 1.9%p(12.9%→14.8%)늘었다. 그러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습' 딱지를 갓 뗀 신입 회계사들의 실무 배치가 빨라지면서 감사 품질의 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이들 역시 선배들처럼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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