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신한금융의 ‘신한FAN클럽’과 우리은행의 ‘위비멤버스’가 출시돼 하나금융을 맹추격하다보니 은행권 전체 회원이 8월말 기준으로 총 1천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예정된 KB금융의 ‘KB멤버스(가칭)’ 까지 가세한다면 조만간 은행계좌를 가진 국민 모두가 멤버스 회원으로 될 것이 분명하다.
우선, 통합포인트 제도의 금융기관간 차별성이 없다.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모든 금융기관의 상품과 서비스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아무리 특별하게 엮어봐야 거기서 거기다. 서비스의 차별성이 없으므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방법은 가격 요소 밖에 없다. 추가적인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거나 기존 수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거나 기존 고객을 유지하기 어렵다.
셋째, 마케팅을 통한 플랫폼 선점으로는 시장 장악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플랫폼을 선점하여 고객들을 묶어둘 생각을 했다면 심각한 착각이다.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로 고객을 가두리 어장에 가둘 수는 없다. 또한 감독규제가 엄격한 산업 특성상 마음대로 창의적 신상품을 제공하거나 소비자를 구속하기 어렵다. 더우기 ICT발전은 금융기관의 선택과 변경에 따른 제약을 손쉽게 없애므로 플랫폼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위와 같은 특성들은 은행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각 은행들이 유치 경쟁에 몰두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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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금융기관들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사익 추구의 탐욕을 벗어나지 못해 참여자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죄수가 격리된 취조실에서 심문 받는 경우 둘 다 침묵하면 모두 석방되지만 둘 다 자백하면 모두 징역 5년이다. 그런데 한 명은 자백하고 다른 한 명이 침묵하게 되면 침묵한 죄수는 10년 징역을 받는 상황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각 죄수는 상대방의 모든 행동(침묵 또는 자백)에도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자백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죄수가 여러 명이거나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은행들이 벌이고 있는 포인트 전쟁도 동일한 상황이다. 모두가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침묵한다면) 전쟁에 소요되는 엄청난 인적·물적 비용을 모든 은행이 절약할 수 있다. 소비자들도 새로운 서비스를 특별히 요구하지 않기에 그 서비스가 없다고 특별한 불만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전쟁을 개시한다면(자백한다면) 다른 은행도 달리 방법이 없다. 가만 있으면 시장을 다 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모든 은행이 참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모든 은행이 유사한 통합포인트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상황은 모든 은행이 정기예금과 같은 동일한 상품을 가지고 있는 상황과 똑 같다. 퍼스트 무버는 엄청난 초기 진입 비용을 투입하여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향상시켰다는 상처 뿐인 영광만 가질 뿐이다.
통합포인트 서비스는 ICT혁명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일 뿐, 제살 깎으면서 경쟁적으로 도입할 만큼 시급하지도 않거니와 특별한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지금처럼 은행산업이 급변하는 전환기에는 전 국민을 시달리게 만드는 시대착오적 경쟁 보다는 은행 산업의 생존 방안을 모색하는 창의와 혁신 경쟁이 훨씬 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