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소설 '탄실' 낸 김별아 작가. 그는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의 삶을 발굴해보고 싶었다"며 "비극적인 그의 삶 뒤에 숨어있는 훌륭한 작품 세계를 온전하게 평가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베스트셀러 ‘미실’로 시작해 자의식 강하지만 고통 속에 살았던 여인의 삶을 오랫동안 조명해 온 김 작가는 결국 자신의 일임을 깨닫고 손을 대기 시작했다. 탄실 김명순.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평가는 기생의 딸로 태어나, 성폭행을 당한 뒤 사회적 비난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근대 최초의 여성 소설가라는 점뿐이었다. 이 우울하고 그늘진 삶 속에 작가라는 본연의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근현대 문학사에서 탄실이 누락되거나 삭제된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완성된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로 등단할 때부터 모두에게 전방위적 공격을 받았다는 거예요.”
기생 어머니가 부잣집의 첩으로 들어가 낳은 딸 김명순은 일본 유학을 3번이나 갈 정도로 신식 교육을 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천한 신분의 오명을 쓰고 안으로 숨어지내기 일쑤였다. 19세 때 일본 유학에선 육군사관학교 생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이 일로 남성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탄실의 이미지는 자유연애주의자 또는 방탕한 여자로 왜곡됐다.
“그의 일생은 괴소문, 추문, 염문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어요. 김기진, 김동인, 방정환 등 소위 글 잘 쓰는 작가들까지 합류해서 지면을 통해 그를 공격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성폭행의 피해자임에도 왜곡된 인신공격의 대상으로 살았던 한 여인이 그것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글 쓰기 외엔 없었던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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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이지만 탄실이라는 여성은 그 식민지 남성의 또 다른 식민지였다는 표현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탄실은 남성 지식인들의 비틀어진 욕망으로 여성을 매도하는 분위기에 저항해 ‘탄실이와 주영이’라는 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
김별아 작가는 "성폭행 피해자인데도 남성 중심 사회에서 본의 아니게 소외받고 멸시받은 한 여성작가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다"며 "하지만 그는 소설이나 번역가 등 작가로서의 활동은 꾸준히 이어왔다"고 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시대가 바뀌어도 탄실의 작가적 삶이 지금과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데뷔 24년 차 작가인데도 데뷔할 땐 성희롱 등 남성 중심의 폭력 문화가 적지 않았거든요. 그것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적도 있고요. 그런 얘기들이 아주 먼 옛날 얘기 같지만, 작품이 많이 팔리기 전까지 여성 작가의 삶은 여전히 탄실의 시대와 다르지 않았죠.”
다음 작품에 ‘여성’이 다시 주인공으로 떠오를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김 작가는 그러나 “누락된 역사에는 관심이 많다”며 “‘왜’라는 질문은 계속 던지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