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죄하기전 돈 안받아" 할머니들 수령거부…위안부합의 논란 2R

머니투데이 박소연, 고석용 기자 2016.08.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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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피해자 의사·현금 지급 방식·소녀상 철거 등 논란 여전…"민간 차원 싸움 계속될 것"

김복동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서 화해치유재단 현금 지급 관련 기자회견중 기자에게 제대로 된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사진=뉴스1김복동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서 화해치유재단 현금 지급 관련 기자회견중 기자에게 제대로 된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망자 2000만원·생존자 1억원' 규모의 현금을 각각 지급키로 결정함으로써 당국 간 협의는 일단락됐지만, 벌써부터 일부 피해 할머니들이 수령 거부 입장을 표명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더욱이 일본이 지속적으로 '소녀상 철거' 요구를 접지 않는 데다 현금 지급 방식을 놓고도 양국이 이견을 나타내고 있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예산 10억엔(약 110억원)을 출연하고, 생존 피해자에게 1억원, 사망 피해자에게 2000만원을 지급키로 했다. 그러나 이를 피해자들이 수령할지는 미지수다.

김복동(90) 할머니는 26일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정부에서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와의 합의에 찬성한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다 거짓말이다. 할머니들은 끄떡도 안 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사죄하기 전엔 돈 안 받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8일 기준 생존 피해자는 46명, 사망 피해자는 199명이다.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은 지난 2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배상금이 많지는 않지만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대부분이 합의에 찬성하고 보상금을 받겠다고 하셨다. 29명이 찬성했다"고 밝혔다.

생존 피해자 가운데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정대협과 나눔의 집 거주 피해자 등 10여명 이상은 '수령 거부' 입장이라는 게 안팎의 추정이다. 이들은 일본측의 위로금을 수령할 경우 이 문제에 대한 당국 간 논의가 이대로 마무리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들 일부가 위로금 수령을 거부한다고 해도 한일 정부 간 합의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4일 위안부 재단에 대한 10억엔 출연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했으며, 이르면 이달 중으로 송금할 것으로 보인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결국 받을 사람은 받고 안 받을 사람은 안 받고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될 것"이라며 "일본측이 금액 출연을 했기 때문에 이제 해법의 공이 한국쪽으로 넘어왔다는 게 안타까운 점"이라고 밝혔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위안부 문제는 인권과 청구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 명만 안 받아도 끝났다고 할 수 없다"며 "받는 할머니들도 위로금으로 받은 것이지 배상금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 청구권은 포기한 것이 아니다. 국가간 외교문제가 종결됐다 해도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개별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광복 71주년인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전범기업 규탄대회에서 일제강점하유족회 회원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패전 71년이 지났음에도 일본정부가 대한민국 피해국민 780여만 명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고 있지 않다며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했다. /사진=뉴스1광복 71주년인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전범기업 규탄대회에서 일제강점하유족회 회원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패전 71년이 지났음에도 일본정부가 대한민국 피해국민 780여만 명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고 있지 않다며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했다. /사진=뉴스1
현금 지급 방식에 대한 한일 정부 간 인식 차도 향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현금'을 지급한다고 밝히면서 의료복지 등 '서비스' 제공보다 진일보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 '현금'은 일시금으로 지급되지 않고 재단이 피해자별 수요를 파악해 맞춤형으로 분할 지급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사전에 수요를 조사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잘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지원한다는 취지에 분할 방식이 더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금액이 피해자들에게 한꺼번에 현금 형태로 지급될 경우 이것이 '위로금'이 아닌 '배상금'으로 비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어 실제 영수증 처리를 요구할 가능성도 여전히 제기된다. 우리 정부는 10억엔을 '배상금' 성격으로 규정짓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측 설득에 실패, 배상금·보상금 명칭을 쓰지 않기로 했다.

양기호 교수는 "일본은 현금이 그대로 지급될 경우 정대협 쪽으로 흘러갈 것을 우려한다. 현금 지급이 될 경우 일본 내 여론을 감당하기도 어렵다"며 "전후보상은 1965년에 끝났기 때문에 현금 지급은 안 된다는 게 일본측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26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영수증 방식은 절대 아니고 현금 지급"이라며 "현금 봉투인지 계좌인지 등 방식은 재단에서 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소녀상 철거'는 가장 큰 뇌관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12·28 합의에서 한국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거듭되는 일본 정부의 철거 요구를 마냥 무시할수만은 없을 거란 예상이다.

양 교수는 "일본 정부가 집요하게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고 합의에도 관련 문구가 있는 데다 한국에선 돈을 받았기 때문에 외교적인 약점"이라며 "일본 정부는 계속 철거 압박을 가할 텐데, 다만 실제 정부가 소녀상을 옮기는 것은 국내 여론상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합의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과 관련 "정부 수준에서는 합의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일단락됐기 때문에 앞으로 한일 간 위안부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삼거나 국제사회에서 문제삼진 못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위안부 문제 논의를 민간 차원에서도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피해자와 시민단체 중심의 '정의·기억재단' 등 민간차원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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