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쟁송의 장이 된 현실 안타까워"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2016.08.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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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전수민 서울시교육청 평화로운학교팀 변호사

전수민 변호사. /사진=김창현 기자전수민 변호사. /사진=김창현 기자


5년 전 동급생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한 대구의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여러가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그 중 하나가 17개 시·도교육청에 전담 변호사를 채용하는 일이었다. 모집공고를 본 전수민 변호사는 망설임없이 서울시교육청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일반 로펌의 새내기 법조인이었던 전 변호사는, 이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변호사 중 대전과 더불어 유일하게 만 4년동안 직을 유지한 자타공인 '학교폭력 전문가'가 됐다.

전 변호사의 이력은 다른 변호사들과는 조금 다르다. 대학에서 생물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주변 동기들이 다 가는 의학 계열 전문대학원이 아닌 로스쿨행을 선택했다. 로스쿨 진학 직전엔 약 1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기간제)로 일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1기 로스쿨 졸업생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당시 일하던 로펌에 사직서를 내고 '고생길'로 뛰어들었다.



◇"학교, 학부모 가리지 않고 문의 많아"

전 변호사는 자신의 업무를 소송 대리보다는 '자문'이라고 소개했다. "주로 학폭 사안에 대한 법적 절차나 대응 방법을 묻는 학교 측의 문의를 처리합니다. 한 달에 열 번 정도는 현장에 직접 나가서 사안을 판단하고 조언을 합니다. 학부모 문의도 잦아요. 오늘은 충남의 학부모도 제게 전화 문의를 하시더라고요. 어떨 땐 같은 사안을 두고 학교와 학부모에게서 동시에 문의 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그럴 땐 모른 척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자문을 해줍니다."



전 변호사가 시교육청에 와서 가장 먼저 맡은 일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자문이었다. 당시만해도 두발 규제 등 인권조례에 배치되는 학칙이 많았던터라 관련 문의가 잦았다.

"예를들어 요즘같이 더운 날 학생이 선글래스를 쓰는 것을 교사가 막을 수 있을까요?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조례와 관련한 문의 내용은 요새들어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조례에 따르면 과거 징계를 받은 학생도 학생회 임원으로 입후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학칙으론 이를 금지하는 곳이 많아요. 학교생활이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런 문의도 잦아지고 있습니다."

전 변호사가 처리한 사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양천구의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명 '부탄가스 테러' 사건이다. 지난해 서초구 모 중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이모 군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전학 전 학교인 양천구 모 중학교에 무단침입 해 부탄가스 2통을 폭발시켰다. 전 변호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군은 이미 일기장에 '불을 지르고 싶다' '누군가를 찌르고 싶다' 같은 폭력적인 문구를 쓰는 등 이상징후를 보였습니다. 학교 측에서 수차례 치료를 권고했지만 이군의 어머니는 완고했습니다. 결국 본인이 재학 중인 학교에 불을 지르고 나서야 어머니는 문제를 인식하고 아이의 병원 치료를 허락했습니다. 이후 대안학교에 가려던 찰나 본인이 다녔던 양천구 중학교에 가서 폭탄을 터뜨린 겁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학교는 힘이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절감했어요."

◇"학교가 법적 쟁송의 장으로 변한 것 안타까워"

학생을 평가하고 때론 징계할 수도 있는 학교가 왜 힘이 없다는 걸까. 전 변호사는 "징계 사유가 아닌 정신적인 질병 등에 대해선 교사가 특별 조치를 취하려 해도 학부모 협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수면 시 호흡이 힘든 특이병을 앓는 학생이 수학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볼게요. 학교는 아이를 데려가는 게 부담스럽겠지만 학부모는 학교가 학생의 교육활동을 제한할 권리가 없다며 여행을 보내고 싶어합니다. 이 경우 여행에서 문제가 생기면 학교는 고스란히 책임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다른 예로는 선생님을 때린 학생도 전학 조치가 힘듭니다. 최근 법원에서는 '교권침해로는 학생을 강제 전학을 시킬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어요."

전 변호사는 "학교폭력법으로 관련 절차가 법제화되며 학교가 법적 쟁송의 장이 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리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나는 사례가 흔해졌어요. 일부 학부모는 폭력과 관계 없이 사소한 절차를 문제 삼아서 학교에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아이들끼리 싸운 건에 대해 금전으로 합의를 보는 사례도 일반화됐어요. 제가 본 사례 중에는 2000만원이 오간 건도 있었습니다. 법치주의가 확립되는 건 좋지만 교육적으론 안타까운 일이죠."

그는 "시교육청 변호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삼아 진정한 학교폭력 사안 전문가가 되고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학교 현장은 여전히 학교폭력법 논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언젠가 교육청을 나가게 되면 지난 4년 간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교사와 학생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학교폭력 처리 절차와 사례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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