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는 '조작된' 영웅이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6.08.1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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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말하지 않는 세계사'…근사하게 치장한 '멋있는 역사'의 '숨겨진 비밀'

"맥아더는 '조작된' 영웅이래~"


인류의 역사는 흔히 위대한 정치가의 지도력이나 힘 있는 국가의 지배력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그런 역사를 통해 인간은 자유롭고 위대하며 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은연중 내비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매 순간, 그 변화의 원인이 아주 작고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 것이었다고 기록된다면 ‘인간의 역사’가 위대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점에 주목한다. 역사에서 사실로 인정되지만 일반적으로 잘 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았다. 저자의 용기(?)로 기록된 진실의 고백은 다음 역사 교과서에서 다시 쓰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는 역사적 증거들이 드러나는데, 우리는 ‘위대한’ 그리스 문화가 독자적으로 창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찌감치 망한 이집트 문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엔 그리스의 자존심이 구겨질 게 뻔하기 때문.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만리장성은 정말 방어에 최고의 무기였을까. 외적들이 만리장성 때문에 중국에 침입하지 못한 적이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지만, 만리장성을 쌓은 수고와 노력을 하찮게 만들고 싶지 않은 그들의 또 다른 위대함이 간직돼야 했을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위대한 승리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혁명을 진실의 첫 수술대로 올린다. 이 혁명은 군주와 왕권에 도전한 시민의 운동으로 칭송되지만, 사실 혁명의 발단은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의 몸부림이라기보다 기후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온도 자료를 보면 16세기 말부터 지구 온도가 크게 상승해 18세기 중반까지 계속된다. 온도가 상승하면 농작물이 잘 자라 모두 잘사는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때 조선을 비롯한 세계 모든 왕은 중흥을 이끌며 위대한 인물로 묘사됐다. 하지만 그것이 주요 이유였을까. 조선의 영조와 정조, 청나라의 강희제, 프랑스의 루이 14세 등은 날씨 덕분에 국민의 소득이 늘어난 시기에 ‘우연히’ 왕의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18세기 말, 지구의 평균 온도가 떨어지면서 농산물 산출량도 급감하자 동·서양 할 것 없이 민란과 혁명이 발생했다. 프랑스 혁명은 그 연장선상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 프랑스엔 대 흉년이 들었다. 밀 수확량이 그전보다 20% 이상 감소해 빵값이 폭등했다. 폭동 발생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시작된 냉전에서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이 91년 45년 만에 해체됐다. 소련의 해체 원인을 역사는 자유주의의 우수성,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위대한 정치력으로 해석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원유 가격의 폭락이었다. 석유와 가스의 주요 생산국인 소련은 80년대 초까지 1배럴에 70달러까지 유지하던 원유 가격을 80년대 말 10달러까지 폭락하는 쓰라린 경험을 맛봐야 했다. 소련을 부모처럼 여기던 위성 국가들은 소련의 원조를 더 이상 받지 못하면서 제 살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인천상륙작전’하면 떠오르는 인물 맥아더 장군의 영웅 이미지는 사실 ‘정치쇼’가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미 해군의 공이 큰데도,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자리에 선 주인공은 해군 사령관 체스터 나미츠가 아닌 육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였다. 하지만 당시 군 계통상 해군보다 육군이 우위에 있는 점을 고려해 대표격으로 맥아더가 나선 것. 맥아더는 이전까지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 필리핀을 일본군에 빼앗기고 호주로 도망간 패배자의 이미지가 숨어있었다.

1710년 완공된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왕은 요강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복도나 정원에서 ‘볼일’을 봤다. 거리에는 인간의 배설물과 교통수단인 말 배설물로 악취가 가득했다. 땅이 귀한 도시에서 화장실을 만들지 않은 근대 이전의 유럽 문화를 파고들다 보면, 현재 유럽 도시 곳곳에 공중화장실이 드물고, 있어도 유료인 이유가 읽힌다.

반면 동양 사회에선 인간의 배설물이 귀하게 쓰였다. 배설물이 농사 비료로 이용될 수 있음을 일찌감치 알아본 혜안 덕분에 집과 거리가 청결했다. 근대 이전까지, 그러니까 수세식 화장실이 개발되고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까지 서양 도시보다 동양 도시가 더 깨끗한 셈이었다.

전쟁에서 전투로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적어도 이 책에서 거짓말이다. 병으로 사망한 병사들이 적과의 전투로 사망한 사람보다 더 많았기 때문. 1812년 러시아 정벌에 나선 나폴레옹 군대는 45만 명이었다. 역사 교과서는 나폴레옹 군대가 추위 때문에 전멸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모스크바에 도착한 병사 10만 명 중 추위로 잃은 병사는 많아도 6만 명이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전 병으로 잃은 병사는 무려 35만 명이었다.

이 책이 진실한 것인가 아닌가는 다음의 의문으로 대체할 수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이산화탄소인데, 1940~70년대까지 전쟁으로 소비한 이산화탄소량은 엄청났다. 온난화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이 시기 그래프가 빠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대 석유의 채굴 가능 연수가 30년이라고 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석유의 채굴 가능 연수는 30년이다. 매장량 정보 자체를 모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현재 2억 명이 넘는 사람이 굶주리고 있지만, 수십 년 전 10억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떠올리면 나아지고 있지,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에 맞는 이야기만 선별해서 하는 경향이 있다”며 “역사도 마찬가지여서 뒤틀고 가공하기 쉬운데, 어떤 것이 그런지 알아가는 차원에서 이런 내용을 다뤘다”고 말했다.

◇ 말하지 않는 세계사=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320쪽/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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