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할매도 도운 ‘감응하는 사랑’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6.07.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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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 토닥토닥편지] 청소년전문가 신현문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이 부모, 교사에게 보내는 메시지

편집자주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복지지출 최하위인 나라, 한국. 경쟁에 밀리고 불안에 지친 많은 한국인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고 삶을 포기한다. 그 무게를 단 1그램이라도 덜어줄 순 없을까. 여기 ‘그래도 괜찮아’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말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희망을 나누고 대안을 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머니투데이와 서울형 사회적기업 이로운넷이 전한다.

- ‘울지마 톤즈’ 살레시오수도회의 인성교육 ‘감응하는 사랑’
- 아오지탁아소 출신 새터민 소년의 마음을 연 기다림의 시간
- 교육은 마음의 일…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느끼는 방식 필요


신현문 발렌티노 신부.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 /사진=이경숙 기자신현문 발렌티노 신부.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 /사진=이경숙 기자


제가 청소년 사목을 오래 했어요. 사제가 되기 전에 교리교사했던 시절까지 치면 한 25년 했을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 아빠, 다른 교사들 고민 들어보면 비슷해요. 사춘기가 왔는지 아이들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애들이 안 쳐다보는 게 아니에요. 못 쳐다보는 거예요. 어쩌면 친구들과 어른들이 싫어하는 뭔가를 한 건지도 모르죠. “넌 왜 사람을 똑바로 보지 않니” 하지 마세요. 일단 기다리세요. 얘가 뭔가 죄의식을 느끼는구나, 하고 모른 척하세요. 신뢰감을 주세요. ‘널 믿어’라는 말은 필요 없어요. 마음 깊이 믿으면 침묵하고 있더라도 전해집니다.

흔히 소통이라면 언어 소통을 생각하지만, 비언어 소통도 있어요. 말로는 ‘널 믿어’라 하는데 얼굴엔 의심이 드러나면, 그게 더 안 좋아요. 감정은 빛보다 빠르게 전해집니다. 침묵하더라도 비언어적 표현이 충분하다면 얘기하지 않더라도 애들이 그 마음을 읽어줘요. 어른보다 더 믿고, 더 잘 기다려주는 게 아이들이에요.



이탈리아에 ‘아모레볼레짜(Amore Volezza)’라는 말이 있어요. 직역하면 ‘가치 있는 사랑’쯤 되는데요, 살레시오수도회와 살레시오수녀회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저는 ‘감응하는 사랑’이라고 그 의미를 전하고 싶어요. 감응(感應)하는 것, 그러니까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이야말로 우리 수도회를 세운 돈 보스코 성인이 말하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현문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이 교리교사 대상으로 교육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사진=살레시오청소년방송신현문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이 교리교사 대상으로 교육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사진=살레시오청소년방송
감응하는 사랑을 직접 체험하게 해준 소년이 한 명 있습니다. 영훈이(가명)를 처음 만난 건 2011년 대전 살레시오청소년수련원 원장으로 지내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영훈이는 무덤 같은 아이었어요. 북한에서 ‘꽃제비’로 살다 ‘아오지탁아소’에서도 살았다고 했죠. 영훈이 말론, 거기서 두 종류의 아이들밖에 못 봤대요. 맞아 죽은 아이, 굶어서 죽어가는 아이.

영훈이는 중국, 태국, 라오스를 거쳐 13살 때 한국에 왔는데, 문화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았어요. 그 과정에서 엄마와는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게 됐고, 같이 한국에 온 형도 연락이 끊겼죠. 아인 수련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무덤 같은 세계, 혼자만의 세계 속에 있었어요. 미술 치료도 거부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달라졌어요. 뭐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미래 유언장 쓰기’ 라는 프로그램을 했죠. 미래에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 가정하고 유언장을 쓴 다음에 관 속에 들어가 누워 있다가 나오는 거예요.


국민할매도 도운 ‘감응하는 사랑’
영훈이는 엄마한테 유언장을 썼어요. ‘어디 계시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내 엄마, 날 낳아주어 고마워요’ 하고요. 그러고 나서 아이는 스스로 무덤을 깨고 나왔어요. 자기 삶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달라졌어요. 그 다음부턴 모든 아이가 그렇듯, 영훈이도 흔들리며 자랐어요. 지금은 한 철강회사에 취직해 독립했지요.

나중엔 우리가 여러 번 이 아이 도움을 받았어요. 우리 후원자 미사를 앞둔 날이었어요. 후원자들한테 사업 의미를 설명해야 했죠. 사례가 필요했어요. 영훈이한테 물어봤어요. 네가 우리랑 지내면서 달라진 얘길 해도 되겠냐, 북에서 온 게 알려질텐데 그래도 되겠냐, 하고요. 그랬더니, “괜찮아요” 하고 쿨하게 말했어요.

국민할매 김태원, 그룹 부활 아시죠? 2014년에 부활이 우리 돈보스코집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집 짓기 후원 콘서트를 열 때에도 그 애한테 양해를 구했어요. 여러 사람들 속에서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아이는 담담했어요. 남의 얘기 듣듯 무덤덤했지요.

아이가 언제 달라졌을까, 우리도 잘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아이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느낀 것 같아요. 아이가 느낀 그 사랑이 엄마의 사랑인지, 하느님의 사랑인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록그룹 부활은 2014년 콘서트 수익금 1억원을 대전 돈보스코의집 증축기금으로 기부했다. 돈보스코의집은 살레시오수도회가 운영하는 탈북, 가출 청소년보금자리다. 왼쪽에서 첫번째는 신현문 당시 대전 살레시오청소년수련원장.록그룹 부활은 2014년 콘서트 수익금 1억원을 대전 돈보스코의집 증축기금으로 기부했다. 돈보스코의집은 살레시오수도회가 운영하는 탈북, 가출 청소년보금자리다. 왼쪽에서 첫번째는 신현문 당시 대전 살레시오청소년수련원장.
감응하는 사랑이란 게, 지금 당장은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내가 줬더라도 그 결과를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받은 당사자도 그럴 거예요. 감응하는 사랑은, 어느 날 느닷없이 깨닫게 되는 그런 겁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랑의 결과가 확인되지 않아 초조할 때, 닫힌 문 앞에서 문고리만 붙들고 있는 것 아닌가 돌아보세요. 기다리세요. 다른 쪽 문이 열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부모한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성장해 부모를 떠나고 또래집단으로 들어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역동입니다.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믿고 기다리세요.

아이가 담배, 술 냄새 풍기며 들어오는 날도 있을 겁니다. 그날은 모른 척하세요. 그래도 아이는 부모가 눈치챈 걸 알 겁니다. 며칠 지나 말하세요. “네가 늦게 온 날, 담배냄새가 나가 화가 났었단다.” 이렇게 ‘나’를 주어로요.

아이들은 어른보다 관대합니다. 아이들과 관계 회복에 늦은 때는 없습니다. ‘사랑해’라고 말하기보다 침묵하면서 기다리세요. 압니다. 힘든 일입니다. 저도 애들한테 다가가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처음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 제가 청소년 사목을 결심하게 된 그때를 떠올립니다.

돈 보스코 성인은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 하셨습니다. 진정 부모가, 교사가, 성직자가, 우리가 아이들을 마음으로 키우고 있는 걸까요. 내 방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묻고 싶습니다. 저도 그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요.
신현문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2013년 당시 대전 돈보스코의 집 원장)이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사진제공=살레시오미래교육원신현문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2013년 당시 대전 돈보스코의 집 원장)이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사진제공=살레시오미래교육원
[팁] 살레시오미래교육원과 신현문 신부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병자를 고치고 교육을 제공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갔던 고 이태석 살레시오수도회 신부의 삶을 담아낸 다큐 영화다. 한국 안에도 ‘톤즈’의 아이들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하는 종교인들이 있다. 살레시오수도회 소속 380여명의 신부, 수사, 수녀들이다.

1854년 돈 보스코 성인이 설립한 이 수도회는 ‘예방교육’을 통해 청소년을 ‘훌륭한 시민’으로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을 맡고 있는 신현문 발렌티노 신부(53)는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고 건강식을 먹듯 청소년들이 탈선하기 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 예방교육”이라며 “예방교육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는 ‘임장지도’, 몸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함께 하는 ‘현존’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신 원장은 2000년 로마 교황청 설립 살레시오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 지금까지 서울, 강원, 인천, 대전 등 전국 각지의 살레시오기관에서 청소년과 함께 지냈다. 또 지난해 살레시오미래교육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원래는 교육회관이었던 건물을 학교밖청소년 특성화 수련시설로 개조했다.
학교밖청소년특성과수련시설인 살레시오미래교육원 전경./사진제공=살레시오미래교육원학교밖청소년특성과수련시설인 살레시오미래교육원 전경./사진제공=살레시오미래교육원
신 원장은 “최근 우리 사회가 청소년, 특히 28만 여명에 이르는 학교밖 청소년의 자립욕구, 미래 준비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민 끝에, 한국천주교살레시오수도회 재단 차원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련시설을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이 교육원은 아이들이 공부를 마친 후에도 사회적기업 등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신 원장은 “우리 교육자들은 지나치게 디지털화 된 아이들에게 목공, 도예를 가르치면서 흙과 나무의 이치를 들려준다”며 “아이들이 탈선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 아이들이 사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성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원은 지역사회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진로직업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신월중학교와 목공, 도예, 3D프린터 체험교육을 결합한 리더십, 인성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학업 중단 청소년들을 위한 검정고시 지원과정인 ‘사랑애바라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조리, 제과제빵, 바리스타 등 계획했던 일부 과정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아직 운영하기 못하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 머니투데이가 3000만 원을 기부하고 강서교육지원청이 협력하는 등 지역사회의 지원은 얻고 있지만, 아직은 정부 지원은 없다. 과거 실적이 쌓이지 않았다는 이유다.

총무팀장을 맡고 있는 권오택 수사는 “부모든, 친척이든 뿌리가 있는 친구들은 흔들렸을 때 잡아주는 이가 있지만 학교밖 아이들 특히 학교에 적응을 못한 아이들은 대개 그런 뿌리가 없다”며 “그런 아이들이 공부하고 기술을 배우면서 독립할 때까지 함께 지낼 수 있는 생활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 교육원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더 늘어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02-2691-6543, 후원계좌 국민은행 758401-04-18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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