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누더기 '김영란법'… 국회가 결자해지해야

머니투데이 문영재 기자 2016.07.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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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세] 누더기 '김영란법'… 국회가 결자해지해야


헌법재판소에 이목이 쏠린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이른바 '김영란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이 28일 내려지기 때문이다.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면 김영란법은 예정대로 9월28일 시행된다. 그러나 위헌 결정이 나면 법 시행은 후속 입법 작업을 마칠 때까지 미뤄진다. 일부라도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 국회는 개정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헌법불합치'나 '한정위헌' 판단을 내릴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친다. 헌재는 위헌은 아니지만 사실상 위헌으로 볼 수 있으면 헌법불합치, 개념이 불확정적이고 다의적이면 한정위헌 결정을 한다.



이번 헌법소원의 쟁점은 △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등까지 해당 법률을 적용하는 게 정당한가 △ 배우자 신고의무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 부정청탁의 개념 등 법 조항이 모호한가 △ 3만원(식사비용 한도)·5만원(선물비용 한도)·10만원(경조사비용 한도)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가 등의 여부다.

김영란법은 공직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며 정치적 산물로 바뀌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김영란법 입법논의는 2011년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이 발단이었다. 금품수수 사실은 인정됐지만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아 해당 여검사가 무죄판결을 받자 입법논의가 본격화됐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을 입법예고한 지 약 1년 뒤인 2013년 8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는 "적용대상이 너무 넓고 위헌 소지도 있다"는 원론적인 논의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갑작스레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김영란법은 3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돼 있었지만 실상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다. 2014년 5월 법안소위에서는 일부 위원의 반대에도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3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도 졸속·과잉 입법 논란이 이어졌다. 당시 취재수첩을 꺼내보니 여야는 지난해 3월2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하는 '4+4회동'을 벌여 막판 절충에 나섰다. 이날은 2월 임시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여야는 쟁점이던 직무관련성과 공직자 가족의 범위 등을 놓고 5시간여에 걸쳐 마라톤 협상을 벌였고 결국 밤 10시30분쯤 합의안에 서명했다. 이 과정에서 김영란법의 핵심내용 가운데 하나인 이해충돌방지 부분이 빠졌다. '반쪽 법안'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게다가 부정청탁금지 처벌대상에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약 6000명이 쏙 빠졌다. 대신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사 임직원 등 민간 신분이 적용대상에 포함됐다.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여야는 법사위·본회의까지 법안을 상정, 통과시켰다. 본회의 표결 결과 재석 의원 247명 가운데 찬성이 226명(반대 4명, 기권 17명)으로 압도적이었다.

본회의 직후 만났던 한 의원은 "정부의 요청도 있었고, 의원총회 결과 당론으로 찬성쪽에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법 시행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고 다수의 범법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했지만, 시간에 쫓기고 여론에 떠밀려 찬성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이상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위헌적이고 법치주의에 반하는 요소를 안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 꽂혀 합의한 졸렬입법"이라며 "문제투성이 법안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치적 논리로 통과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매우 개탄스럽고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정부 원안과 동떨어진 '누더기법'이란 오명까지 뒤집어쓴 김영란법은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19대 국회가 낳은 대표적인 졸속·과잉 입법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법의 일관성과 안정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법의 취지와 목적이 좋고, 잘 만들어져도 지켜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형평성 논란은 물론 위헌소지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법안도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통과시키고, 부작용이 나타다면 바꾸겠다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한국 정치의 후진적인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씁하다. 국회 스스로 역사적 과오를 면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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