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자택 안방에서 남편 송모씨(61)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부인 A씨(58)의 얼굴에 심한 상처가 발견됐다. A씨 시신을 살핀 검안의는 "심한 폭행에 따른 안면손상이 A씨를 숨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부검 결과 직접 사인은 약물로 드러났지만, 전문가가 헷갈릴 정도로 사망 직전까지 A씨가 심한 폭행을 당했다는 얘기다.
최초로 경찰이 송씨의 가정폭력을 의심한 것은 지난 3월 초 한 대학병원 의사가 내원한 A씨의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증상을 확인한 뒤 신고하면서다. 경찰은 자택 주변 CCTV(폐쇄회로화면)를 분석, 송씨가 주먹과 발로 A씨의 머리를 수차례 폭행하는 모습을 확보했다.
가정폭력이 명백한 상황에서 검찰은 송씨에 대해 시한부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폭행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A씨가 제대로 진술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능력이 향상될 때까지, 또는 인지능력 부족이 장기간 이어져 상해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영장기각과 기소중지로 처벌을 피한 송씨는 5월말 또 한차례 A씨를 폭행했다. 당시 "A씨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앉아있다"는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곧장 A씨를 쉼터로 옮겼다. 동시에 A씨를 관리할 학대전담경찰관(APO)을 지정했다. APO는 A씨가 쉼터에서 지낸 16일을 제외한 한달여 동안 총 7차례 A씨 집을 방문하고, 13차례 안부전화 등 모니터링을 했다. 경찰 내규인 '월 1회 방문 또는 모니터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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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A씨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도 않았다"며 "남편이 격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자택을 방문하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가정폭력 전과 18범' 송씨의 곁에 A씨를 둔 채로는 피하기 어려운 참극이었던 것. 우범자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 '직무범위 확대'를 외치는 경찰의 요구가 무색해진 대목이다.
검찰의 기소중지, 경찰의 우범자 관리 소홀에 이어 법원은 지난달 21일 다시 한 번 송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첫 번째 영장과 마찬가지로 "구속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경찰은 지난 11일 검사 지휘로 영장을 재신청했고,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이 계류 중인 가운데 참사가 벌어졌다.
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측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점에 대해 법원으로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각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 그 시점에 제출된 자료 등을 바탕으로 구속사유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판단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