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증권부장
대한민국의 두 국가대표 기업의 사례다. 짧게는 20여년, 길게는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신화가 됐지만 당시로서는 현장사정을 잘 모르는 총수(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들의 무모함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그들의 불호령은 쓴소리를 넘어서 독설로도 받아들여졌다. 불길이 치솟으며 직원들의 안타까움과 한숨이 배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분기 또는 연간 단위로 수십조 매출을 기록하는 포스코와 삼성전자 같은 기업의 제품들이나 생산라인을 CEO나 오너 혼자 챙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스레 내부 경영진단을 위한 조직이 강화됐다. 물론 여전히 CEO나 총수의 직관에 기반한 매의 눈도 있다.
업황 악화이든, 판단 잘못이든 실적이 좋지 못하거나 경영을 잘 못 했으면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만난 A 신평사 대표는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섣불리 등급을 내렸다가 그야말로 뜨거운 맛을 봤다”고 토로했다. 그룹이다 보니 다른 계열사들은 등급평가에서 절대로 A사를 이용하지 않았다. B사나 C사같은 대안이 있는 탓이다. 매출과 점유율 하락을 감수해야 했다.
투자의견(매도나 중립의견) 제시나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권유(회사의안 반대)를 과감히 했던 기관이나 증권사도 사정은 비슷했다. 해당 직원들은 윗사람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기 일쑤다. 게다가 회사채 발행이나 상장, 유동화 업무 등에서 배제당하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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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위해 고금리를 제시해야 하고, 이도 안 되면 은행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신용등급이 낮춰지면 자금 조달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고, 더 부실해지는 악순환에 처할 수도 있다. 매도나 중립 투자의견으로 주주와 기관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당히 손본 호평 일색이다보니 박한 평가를 살펴보며 스스로 개선하는 자정노력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문제다. 예방주사가 싫어 피해다니다 보니 감기에 그칠 수 있었는데 치사율 높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시달릴 수 있다는 말이다.
포스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일본 철강사 신일철주금의 실적을 보면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세계 철강경기가 불황이었다지만 지난해 신일철은 1조4904억원의 흑자를 낸 반면 포스코는 96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창사 47년 만에 포스코의 사상 첫 적자였다. 비관련 사업다각화로 2014년부터 신평사로부터 경고음이 나왔었는데 포스코는 피해가지 못 했다. 쓴 소리는 쓰지 말라며 귀를 막은 결과치고는 참담했다. 2012년 신일철주금은 물론 포스코보다 3배 덩치가 큰 아르셀로미탈을 누르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철강사로 등극하기도 했던 것은 추억일 뿐이었다. 신일철의 와신상담이거나 포스코의 방심이었을 터다.
비상등이 켜졌는데 무시한 결과는 조선.해운업에서도 그대로다. 폭파나 전면소각의 결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싫은 소리라도 들어주는 인내,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