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박사./출처=위키피디아
만물에 질량을 부여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예측한 공로로 2013년 노벨상을 받은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교수도 '이 사람이 쓴 새로운 해석을 보고 논문을 써내려 갔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벤자민 W. 리 또는 벤 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사람은 '이휘소' 박사다.
이 박사는 마이애미대 물리학과를 1년반 만에 수석 졸업하고 4년 만에 석·박사를 마친다. 이어 펜실베이니아대와 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게이지이론의 재규격화'와 '참(charm)입자 탐색' 등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 물리학계의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그의 연구를 지원하길 원했다. 그러던 중 39년 전 오늘(1977년 6월16일) 학회 참석차 콜로라도로 가다 고속도로에서 마주 오는 트럭과 정면 충돌하면서 42세의 나이로 타계한다.
이 박사가 숨진 뒤 1978년부터 열린 추모학회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살람 박사, 레온 레더만 박사, 토프트 박사 등이 참석하면서 당시 세계 이론물리학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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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구성과는 사후에 더 가치를 빛내며 노벨상 수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9년과 199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연구들이 이 박사의 해설과 연구를 참고했다는 평이다. '힉스'라는 명칭도 그가 처음 붙였다.
그와 연구를 함께했던 스티븐 와인버그는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상은 이휘소의 공"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이 박사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소설이 잇따라 출간되며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 속의 그가 한국의 핵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되면서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탓이었다. 이 박사는 생전에 개발도상국, 특히 독재체제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하는데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었다.
이 때문에 이 박사 유족이 소설 내용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고, 출판금지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설이 허위임은 인정하면서도 명예훼손은 인정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면서 과학계의 비난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