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 오늘… 노벨상 유력한 '천재 물리학자' 잃다

머니투데이 박성대 기자 2016.06.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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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세계적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교통사고로 사망

이휘소 박사./출처=위키피디아이휘소 박사./출처=위키피디아


39년 전 오늘… 노벨상 유력한 '천재 물리학자' 잃다
해마다 10월 노벨상 수상자 발표 기간이 가까워지면 늘 입에 오르내리는 한국계 과학자가 있다. 국내 물리학자들은 "이 사람이 살아 있었으면 이미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만물에 질량을 부여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예측한 공로로 2013년 노벨상을 받은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교수도 '이 사람이 쓴 새로운 해석을 보고 논문을 써내려 갔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벤자민 W. 리 또는 벤 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사람은 '이휘소' 박사다.



그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화학보다 물리학에 더 관심을 가진 이 박사는 전과를 하려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미군장교부인회 후원 장학생에 지원해 유학길에 오른다.

이 박사는 마이애미대 물리학과를 1년반 만에 수석 졸업하고 4년 만에 석·박사를 마친다. 이어 펜실베이니아대와 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게이지이론의 재규격화'와 '참(charm)입자 탐색' 등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 물리학계의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이 박사는 196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3년 후 세계 최고 물리학연구소 가운데 하나인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페르미랩)에서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끈다.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그의 연구를 지원하길 원했다. 그러던 중 39년 전 오늘(1977년 6월16일) 학회 참석차 콜로라도로 가다 고속도로에서 마주 오는 트럭과 정면 충돌하면서 42세의 나이로 타계한다.

이 박사가 숨진 뒤 1978년부터 열린 추모학회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살람 박사, 레온 레더만 박사, 토프트 박사 등이 참석하면서 당시 세계 이론물리학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변했다.


그의 연구성과는 사후에 더 가치를 빛내며 노벨상 수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9년과 199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연구들이 이 박사의 해설과 연구를 참고했다는 평이다. '힉스'라는 명칭도 그가 처음 붙였다.

그와 연구를 함께했던 스티븐 와인버그는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상은 이휘소의 공"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이 박사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소설이 잇따라 출간되며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 속의 그가 한국의 핵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되면서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탓이었다. 이 박사는 생전에 개발도상국, 특히 독재체제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하는데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었다.

이 때문에 이 박사 유족이 소설 내용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고, 출판금지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설이 허위임은 인정하면서도 명예훼손은 인정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면서 과학계의 비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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