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화여자대학교의 ‘여성리더십’ 과정에서 들었던 이봉진 자라리테일코리아 사장의 강연이 생각났다. 미들턴이 푸른색 자라 원피스를 입자 세계 여성이 열광하며 그 드레스를 찾았다. 하지만 자라는 품절을 선언했다. 그 옷이 다 팔려서다. 자라는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다. 특정 물건이 아무리 잘 팔려도 추가 생산하지 않는다. 자라의 모든 매장에선 미들턴의 안목을 앞세워 다른 제품을 추천했다.
독특하다. 하지만 경영 철학은 더 놀랍다. “빨리,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걸 인정하고 영업, 마케팅 전략을 세웁니다.” 이 사장의 이런 설명에 참석자 모두 탄성을 내뱉었다.
자라에게 ‘불량률 제로’ 따위는 목표가 아니다. 대박 상품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내부 경쟁을 시키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자유롭게 만들게 한다. (자라의 디자이너 그룹에는 유명 패션 학교 졸업자도 있지만, 중학교 졸업자도 있다.) 자라는 스페인 현지에서 직접 만든 제품을 특별전세기로 60여 개국 3000여 개 대리점에 직접 보낸다.
구의역에서 꽃다운 목숨이 사라졌다. ‘이 일만 끝내고 먹자’고 했을 가방 속의 컵라면이 모두를 울렸다. 한창나이에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이번 일을 잘 해내면 정규직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꿈에 한 끼 정도를 놓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을까.
모두가 분노하고 슬퍼할 때 영국에 거주하는 김세정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아프게 곱씹었다. “한 시간 내 일을 처리하라는 지침. 죽음을 ‘처리’하는데 드는 시간은 그보다 짧은 이십 여분. 그 사고를 처리하고 운행을 재개하면서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알림. 눈곱만큼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시민의 권리. 옆문을 이용하고, 고장 난 문이 고쳐질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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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정규직 청년의 목숨을 고장 난 문의 불편함보다 못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조를 짜고, 전동차가 운행하지 않는 야간에, 온전한 수당을 받고 안전하게 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근원적 문제 외에 그 불편함을 참아주는 시민의식은 생각하지 않았다. 빠르고 완벽한 서비스를 요구하기만 하는, 진짜 참혹하고 무서운 우리의 민낯이었다.
허기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청년의 희망을 꺾은 것은 메트로의 비리나 나쁜 관행만이 아니다. ‘누구도 비참하게 살지 않아야 할 권리, 누구도 안전하게 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었다면, 청년의 죽음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박원순 시장이 7일 고개를 숙였다. 철저한 감사와 관계자 처벌 그리고 책임을 통감했다. 하지만 이번 죽음이 과연 마지막일지 여전히 불안하다. 사회 구성원으로, 언론인으로 져야 할 책임 앞에 함께 고개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