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봄날처럼 경쾌하고 은여우처럼 활달한 야생의 시어

머니투데이 공광규 시인 2016.05.0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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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은봉 시인 ‘봄바람, 은여우’

[시인의 집]봄날처럼 경쾌하고 은여우처럼 활달한 야생의 시어


늙어가는 저녁볕
더욱 찬란하거늘
강물 위 조용히 떠 흐르고 있구려
더러는 자맥질해
눈뜬 물고기들 잡기도 하는구려
당신 따라 새끼오리들도
자맥질하는구려
그것들도 물고기들 잡으려
강물 속 진흙 말 끌어안고 있구려
공주 금강가 언덕
모처럼 착하고 아름답구려
이 모든 것들 위해
물오리 한 마리,
물속의 발갈퀴 재빨리 휘젓고 있구려.
- 물오리 전문


시인은 어느 날 저녁 고향인 공주 금강에 가있다. 마침 노을이 빠진 아름다운 강물 위에 물오리가 떠있다. 물오리는 자연스럽고도 조용하게 떠서 강물을 따라 흘러가기도 하고 가끔 자맥질을 하기도 한다. 새끼오리도 같이 있어서 어미오리를 따라서 자맥질을 배운다. 시인은 이런 자연의 모습이 마냥 착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저녁만큼 찬란하게 늙어가는 시인의 그윽하고 아름다운 눈이 그려진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이은봉 시인이 10번째 시집 ‘봄바람, 은여우’(도서출판b)를 펴냈다. 1953년 공주 출신인 시인은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를 통해 등단하였다. 72편을 묶은 이번 시집은 요즘의 봄날처럼 가볍고 경쾌하며, 은여우처럼 활달하고 야생적이다.

시인은 교섭 시집의 서문에서 이 시집을 ‘바람의 시집’으로 읽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람은 사람이다. 사람은 바람이다. 바람은 세상이다. 세상은 바람이다. 바람의 역사를 살고 있는 것은 사람이다”라는 연쇄적 상상을 한다.



물론 이런 대답 이전에 시인은 연쇄적 질문을 던진다. “바람은 무엇인가. 바람은 누구인가. 바람은 어디서 살고 있나. 바람은 몇 살인가. 질문으로, 상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이다.”라고. 물론 시인이 말하듯 “바람은 공기이고, 돌은 흙이다. 공기인 바람도 4원소 중의 하나”다. 시인은 바람은 소리이며, 뜻이 아니고, 언어인데, 기의 언어가 아니라 기표 언어라고 한다. 바람에 대한 사색과 통찰이 깊다.

표제시인 ‘봄바람, 은여우’에서 “봄바람은 생명의 경쾌함을 은여우는 야생의 활달함”을 비유한다.

봄바람은 은여우다 부르지 않아도 저 스스로 달려와 산언덕 위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은여우의 뒷덜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두 다리 자꾸 후들거린다/ 온몸에서 살비듬 떨어져 내린다/ 햇볕 환하고 겉옷 가벼워질수록 산언덕 위 더욱 까불대는 은여우/ 손가락 꼽아 기다리지 않아도 그녀는 온다/ 때가 되면 온몸을 흔들며 산언덕 가득 진달래꽃 더미, 벚꽃 더미 피워 올린다/ 너무 오래 꽃 더미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 발톱을 세워 가슴 한쪽 칵, 할퀴어대며 꼬라지를 부리는 은여우/ 그녀는 질투심 많은 새침데기 소녀다/ 짓이 나면 솜털처럼 따스하다가도 골이 나면 쇠갈퀴처럼 차가워진다/ 차가워질수록 더욱 우주를 부리는 은여우, 그녀는 발톱을/ 숨기고 달려오는 황사바람이다. -봄바람, 은여우 전문


봄바람은 은여우 때문에 까불대며 빛나게 되고 은여우는 봄바람 때문에 변덕스럽고 화사해진다. 서로 의존하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고 보완하는 관계가 있을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사랑은 감정의 의지와 보완이다. 우리도 누군가와 봄바람과 은여우의 관계가 되어 가볍고 경쾌하며 활달한 야생의 인생을 구가해보자.

◇봄바람, 은여우=이은봉 지음. 도서출판b. 163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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