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왜 우리나라만 없을까? 올해 '첫 선'보인다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6.03.09 03:15
글자크기

'국내 1호' 전문 북디자이너 정병규씨, 젊은 디자이너들과 '한국의 아름다운 책' 대회 제도화 준비

독일 서적예술협회가 주최하는 '세계 북디자인 대회'에서 지난 2월 금상을 수상한 중국책 '한 주문서와 관련된 이야기' 실제 주문서를 활용해 표지를 디자인했다./사진=바이두독일 서적예술협회가 주최하는 '세계 북디자인 대회'에서 지난 2월 금상을 수상한 중국책 '한 주문서와 관련된 이야기' 실제 주문서를 활용해 표지를 디자인했다./사진=바이두


지난해 '세계 북디자인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일본작가 메구미 카지와라, 다츠히코 니지마의 팝업그림책 '모션 실루엣'.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사진='모션 실루엣' 텀블러 지난해 '세계 북디자인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일본작가 메구미 카지와라, 다츠히코 니지마의 팝업그림책 '모션 실루엣'.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사진='모션 실루엣' 텀블러
#지난 2월 중국 도서 2권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됐다. 독일 서적예술협회가 개최하는 '세계 북디자인 대회'에서 '한 주문서와 관련된 이야기'와 '배움의 미학'이 각각 금상, 동상을 수상한 것. 수상작들은 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에서 주최하는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된 뒤 이번 세계 대회에 출품됐다.

매년 독일 서적예술협회가 개최하는 북디자인 경연대회에는 32개국에서 700여개의 작품이 출품된다. 최고상인 황금활자상(Golden letter)을 포함 금상, 은상, 동상 , 명예수상(Honorary Appreciation)까지 10여작품이 선정돼 전시회를 연다. 지난해에는 일본작가 메구미 카지와라, 다츠히코 니지마의 팝업그림책 '모션 실루엣'이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도서는 출품되지 못했다. 국내 북디자인 관련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북디자인 관련 대회가 전무한 까닭이다.

◇ 1980년대 후반 북디자인 영역 본격화…북디자인 대회 중단돼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북디자인 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디자인' 분야가 독자적인 전문분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 교보문고는 1989년 '제1회 북디자인상' 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대회는 3회까지 하고 막을 내렸다.

이후 일부 관련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북디자인 전시회가 개최돼왔다. '북디자인'이란 분야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정병규 북디자이너는 1996년 환기미술관에서 국내 첫 북디자인 전시회를 열고 그가 1970년대 초부터 디자인한 책 가운데 500여종을 전시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우리나라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선정돼 당시 도서전 조직위원회(KOGAF)를 중심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을 선정, 도서전에 출품키도 했다.


2011년에는 서점 '더북소사이어티'와 김경은, 김형재, 신동혁, 전용완, 홍은주 등 젊은 디자이너 5명이 아름다운 책을 선정한 뒤 전시회를 열었다. 작가 김중혁씨는 현재 소설 전문 웹사이트 '소설리스트'에 매주 '표지갑'(甲)을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디자인 관련 행사가 정례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정병규 북디자이너/사진제공=정병규한글연구소정병규 북디자이너/사진제공=정병규한글연구소
◇ 정병규 북디자이너 "책의 '격'을 만들어 주는 행위…'아름다운 책'대회 제도화할 것"



이에 국내 일부 디자인, 출판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 북디자인 대회를 준비 중이다.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개최해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국내에 처음 '북디자인'이란 독자적인 분야를 확립하고 '전문 북디자이너'의 영역을 만든 정병규 북디자이너가 주축이다.

정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출판·디자인 업계 분들과 함게 '한국의 아름다운 책'이란 사단법인을 만들고 있다"며 "오는 11월 하순쯤 첫 심사를 하고 국내에서 전시회를 연 뒤 내년 1월 세계대회에 출품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출판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출판 종수도 늘고 콘텐츠의 질도 좋아졌지만 상대적으로 디자인 분야는 괄목할만한 성장은 못이뤘다고 평했다.



정씨는 "물론 이제는 (출판계에서도) '책도 디자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필요충분조건이 됐다"면서도 "아직도 출판산업과 '책 자체의 문화'가 구별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디자인이 출판의 한 부분이면서도 독립된 디자인, 문화 분야로 구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출판산업과 책만의 문화를 구별하는 것이 출판계와 디자인계가 서로를 비추어보는 거울 역할을 하면서 함께 발전할 방법이 아닐까 한다"고 전했다.

정씨는 북디자인이 곧 책에 '격'을 만들어주는 행위라는 소신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책이 하나의 '물질'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원고에 맞는 옷을 마련해주는 것이 북디자인 아니겠습니까.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듯이 책에는 '책격'이 있는 셈이지요. 사단법인을 통해 '아름다운 책' 대회의 독립성도 확보하고 연례적인 제도로 잘 정착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서 책이 지난 독립성, 자존성, 문화적인 가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네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