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군주는 정치를 잘 할 수 없다(女主不能善理). 왕이 여자라서 이웃나라들이 업신여기는 것이다. 우리 황실의 남자를 보내줄테니 신라 왕으로 삼으라." 국가의 위신뿐 아니라 왕실의 권위도, 선덕여왕의 자존심도 땅에 떨어졌다.
#2.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8월12일,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영소 동맹의 균열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처음 만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수상은 대뜸 영국이 독일 포위를 위한 제2전선 구축을 일부러 미루는 것 아니냐고 차갑게 몰아붙였다. "위험을 감수할 준비도 안 돼 있으면서 무슨 전쟁에서 이기겠다고 하느냐"고 빈정대기도 했다.
역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이 3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동의가 있어 가능한 결과였다.
그러나 지난달말 미중 외무장관 회담 전까지 중국은 제재보다 대화를 강조하며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의 이런 태도 탓에 일각에선 '망루외교 실패론'을 넘어 '대중외교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중국에 대한 실망감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대중외교 만으로 중국이 '60년 혈맹' 북한 대신 우리 편에 서길 기대했다면 그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중국이 고강도 대북제재 결의안을 수용했다고 해서 북한의 붕괴를 용인할 것으로 보는 것도 섣부른 해석이다. 중국으로선 북핵 문제에 따른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박도 부담이지만, 북한 붕괴시 한미 연합군과 국경을 맞대야 할 경우의 군사적 압박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중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낙관만 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이번 대북제재 결의안은 미중 두 강대국 간 게임의 결과일 뿐이다. 중국이 고강도 대북제재 결의안을 수용해 준 대가로 미국이 무엇을 약속했는 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중국이 극렬 반대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의 한반도 배치 또는 미중 간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 군도) 문제가 카드가 됐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계기로 중국의 도움 없인 한반도 비핵화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됐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북한 유사시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반도 내 핵시설 동결과 게릴라 무장해제, 난민 유입 차단 등을 명분으로 남하해 일부 지역을 점유한다면 통일은 반쪽짜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한 중국과의 신뢰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외교는 냉혹한 현실이다. 중국으로부터 기대할 게 많지 않고 때론 서운하더라도 대중외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스탈린의 외교 행태에 대해 영국에서 비판이 일자 처칠은 1943년 9월21일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맹관계의 단점을 이야기할 땐 동맹관계의 장점이 얼마나 큰지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