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책임 없다는 신안군, 10년 전 재발방지 약속했었는데…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이경은 기자 2016.03.05 06:30
글자크기

[서초동살롱<106>]국가와 본격적으로 싸움 시작한 염전노예 피해자들

전남 신안군 도초도의 한 염전 모습전남 신안군 도초도의 한 염전 모습


수년간 장애인을 유인해 염전에 가두고 임금 없이 혹사시켰던 사건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이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섭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판사 김한성)는 염전노예 피해자들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1차 변론기일을 진행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소송이 시작된 셈입니다. 과연 이들의 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2년 전 편지 한통으로 알려진 '염전노예'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지적장애인 A씨는 2008년 더 나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고모씨(72)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A씨는 고씨를 따라 전라남도 목포의 직업소개소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A씨는 신안군의 한 외딴 섬 염전으로 보내집니다.



A씨가 찾은 염전은 괜찮은 일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염전 운영자 홍모씨(50)는 A씨를 가혹하게 부렸습니다. 하루 5시간을 채 재우지 않고 일을 시켰고 염전에서의 노동 외에도 벼농사, 건물공사 잡일 등도 시켰습니다. 쉬지 않고 일했던 A씨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2012년 시각장애 5급의 B씨도 홍씨의 염전으로 끌려왔습니다. B씨는 2000년 과도한 카드빚을 져 공사장을 10여년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하다 꼬임에 넘어갔습니다. B씨는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고 그때마다 홍씨로부터 학대를 받았습니다.

B씨가 몰래 집으로 보낸 편지로 A씨와 B씨가 구조된 것은 2014년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5년 2개월, 1년 6개월을 염전에서 노예로 살아야했습니다.


염전에 있었던 63명의 노예,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지자체와 경찰에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대체 이 기간동안 국가기관은 무엇을 했냐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경찰은 부랴부랴 염전지역 근로자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이 결과 총 63명이 이같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 중에는 10년간 임금체불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신의도의 한 염전에서 일한 허모씨(56)는 가끔 용돈을 받았을 뿐, 노동에 대한 대가는 받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허씨가 10년간 받지 못한 임금이 최저 1억2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정신지체 장애인 C씨도 2012년부터 2년여간 염전에서 일을 하며 15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등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는 2억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장애인을 데려와 팔아넘긴 업자와 이들을 노예로 부렸던 염전주들. 국민들은 이들에게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받은 처벌은 달랐습니다. 일부 가해자들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도 많았습니다. 법원이 다수의 염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범행인 점, 피해자들과 합의하거나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관대한 처분을 내린겁니다. 일부는 임금을 보전해주는 대가로 처벌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들 대안 없어 다시 염전으로…"국가가 책임져야"

피해자들 중 일부는 소송을 통해 염전주로부터 임금 외에 위자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고작 3년치 임금을 보전받은 것에 그쳤습니다. 노숙인 시설로 보내진 피해자들 중 일부는 다시 염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신안군에서 2006년 같은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사실입니다. 2006년 정신지체 장애인 C씨가 인신매매로 신안군에 끌려온 뒤 노예처럼 혹사당한 '노예 청년' 사건이 보도됐었습니다. 그는 10년간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고 염전에서 일했으며 노예 취급을 당했습니다. 2014년 알려진 염전노예 사건과 '판박이'입니다.

당시 신안군은 공개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었습니다. 전수조사도 선언했습니다. 신안군이 당시 제대로 된 대처를 했었다면 10년간 노예생활을 했던 허씨는 그때 드러났어야 하며 A씨와 같은 피해자는 이후 발생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헌법 29조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국가배상법 2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하 "공무원"이라 한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번 소송은 염전노예를 보호하지 못한 경찰과 신안군에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와 신안·완도군 측 대리인은 첫 재판에서 "염전에서의 부당한 노동은 근로관계에 관한 것이어서 특별히 문제가 발견되거나 신고되지 않는 한 경찰이 개입하기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고의, 과실이 없었으므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얘깁니다.

피해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 상태에 있었고 지척엔 면사무소와 파출소가 있었지만 주민을 보호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이 같은 관행을 묵인하거나 방조했다"며 국가 책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안군은 2006년 발생한 사건과 그때 했던 전수조사, 재발방지 약속을 벌써 잊은 것일까요. 피해자들이 국가와의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