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사회의 자기보호

머니투데이 조명래 단국대학교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2016.02.26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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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 사회의 자기보호


삶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저성장에 따른 수출둔화, 저물가, 실질소득 감소, 실업 증가, 불평등 및 양극화 심화, 빈곤확대 등이 보편화됐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뉴노멀’(New Normal)이라 부른다. IT 등 신기술의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위한 일자리나 소득이 늘지 않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경영자나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신산업화의 과실이 집중되는 현상에서 뉴노멀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는 주로 2000년대 미국의 현상을 반추한 것으로, 그 이면엔 신자유주의란 자유시장 이념이 모든 것의 으뜸 규범이 되는 변화가 있다. 시장의 경쟁게임에서 승자가 모든 걸 취하는 이른바 승자독식이 곧 신자유주의의 속살이자 법칙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은 전에 없는 자본주의적 호황을 누렸다. 이 시기를 미국에선 ‘도금의 시대’(Gilded Age), 프랑스에선 ‘좋은 시대’란 뜻의 ‘벨 에포크’(Bell Epoque)라 불렀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전에 없는 부의 편중과 불평등이 깊었던 때이기도 했다. 19세기 자유방임에 기초한 경쟁자본주의 혹은 자기조정시장제도가 만개했지만 그 호황의 깊은 그림자는 결국 1,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그후 1980년대까지 롤백(roll back)한 국가가 시장을 규율하고 선도하는 시대가 전개되지만 복지국가의 실패로 지칭되는 국가의 실패가 나타났다. 그 결과 사회운영을 다시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했다. 뉴노멀은 범지구화로 치달은 신자유주의가 감춘 모순이 표층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거대한 전환’의 저자 칼 폴라니는 어느 누구보다 시장지배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고 또 그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대안을 주문했다. 그는 시장경제의 전 사회적, 전 세계적 확산에 따라 인간, 자연, 그리고 생산(삶) 조직이 막대한 피해를 입음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하는 이른바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을 주창했다. 시장경제는 그냥 두면 거대하고 영구적인 악을 낳는다는 로버트 오언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시장제도 확장은 모든 걸 시장으로 끌어들여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가격법칙, 수요·공급법칙)의 지배를 받도록 한다. 심지어 시장화하지 말아야 할 사람, 자연과 일상의 삶마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바뀌면서 수요·공급과 같은 시장의 법칙에 지배받게 되었다고 한다. 상품이 되어선 안 될 사람, 자연, 일상의 삶을 시장거래로 마치 생산된 재화와 같이 간주하는 이 현상을 폴라니는 ‘상품 허구’라 불렀다.

자연과 인간의 운명을, 그리고 삶의 전체를 시장에 맡기는 것은 종국엔 파멸을 의미하지만 ‘상품 허구’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시장운동에 대척되는 반대운동의 핵심은 바로 생산요소인 토지와 노동에 관한 시장활동을 억제하는 것이고 경제를 다시 사회의 품에 안기도록 하는 걸 원리로 삼는다. 시장은 본래 사회에 묻혀 있었지만 자본주의화와 더불어 사회의 품을 떠나 자기 스스로 조정하고 조율하면서 거꾸로 사회(사람, 자연, 삶)까지 거기에 예속했다. ‘사회의 자기보호’는 자기조정체계로서 시장의 지배에 맞서 인간, 자연, 삶을 지키는 걸 말한다. 사회보호를 위해서는 시장으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주체들이 연대해 대안사회(공동체, 협동조합, 분권체제 등)를 만들고 다양한 보호입법과 경제규제를 제정해 전국화(세계화)하는 시장을 규율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폴라니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대표적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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