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화두 '테러방지법'…검찰은 왜 언급했나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이경은 기자 2016.02.0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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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102>]"테러 범죄 관련 법 조항 없어 형사처벌 불가능"

정치권 화두 '테러방지법'…검찰은 왜 언급했나


지난 4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국제테러단체 '알 누스라 전선'을 추종한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의 테러 연계성과 관련해 설명할 사안이 있다며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구속기소된 인도네시아인 A씨(33)는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선고를 앞둔 피고인에 대한 추가 조사 내용을 법정이 아닌 검찰청사에서 밝히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테러단체와 연관된 A씨의 활동이 확인됐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확인된 내용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긴급하게 열린 브리핑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테러 지원 정황, 처벌할 법적 근거 없어"…"테러방지법 필요성 공감"

검찰은 A씨가 2014년 7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1차례에 걸쳐 이슬람 지하드 전사를 지원하기 위해 200여만원을 송금한 사실 등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금이 테러와 관련된 것인지 확인할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또 A씨가 2007년 10월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발리 테러를 주동한 '제마이슬라미아' 등의 테러단체를 추종하며 사상 교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그러나 이 내용을 공소장에 반영하지는 않는답니다. 그러면서 "테러관련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이 단순히 A씨의 테러 연관 활동을 죄로 물을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려 한 걸까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공소장을 변경할 것도 아닌데 관련 내용을 특별히 공개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검찰은 "우리나라를 '국제적 테러 위험'에서 예외로 볼 수 없고 최근에 만난 기자들도 테러방지법에 대해 궁금해했다"고 답했습니다.


"테러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냐"고 묻는 말에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정치권 화두 '테러방지법'…검찰은 왜 언급했나
◇테러방지법 뭐기에…'국정원의 정보수집 허용' 두고 여야 줄다리기

이는 검찰이 에둘러 테러방지법의 제정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읽힙니다. 테러방지법은 현재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하나입니다.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은 2013년 3월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제출한 '국가 대테러 활동과 피해보전 등에 관한 기본법안' 등 3건입니다. 송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정부가 추진한 것을 토대로 합니다.

이 법안은 국가정보원장을 포함시킨 국가대테러센터를 설치해 테러단체 구성원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출입국과 금융거래, 통신이용 등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같은 당 이노근 의원은 '테러예방 및 대응에 관한 법률안'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여기서도 테러업무를 국정원이 주관하도록 정했고 대테러센터장은 테러 위험 인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조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 달 먼저 이병석 의원이 제출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 또한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는 '사이버테러방지법'으로 불리는 △사이버테러방지 및 대응에 관한 법률안 △사이버위협정보 공유에 관한 법률안 △국가 사이버테러방지에 관한 법률안 또한 계류돼있습니다. 국정원장이 사이버 위기 관리를 선제적·즉각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한 법안입니다.

야당과 인권단체 등은 국정원의 기능이 비대해지고 국가보안법처럼 오·남용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와 여당이 국정원을 초헌법적 기구로 만들려고 한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선거개입, 댓글공작, 감청 등을 자행한 국정원에 대테러 중심기구 역할을 맡기는 것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부실기업에 미래 성장을 맡기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온라인상으로 개인정보를 무차별 감시해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협상 중인 여야는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이 아닌 국무총리실에 두는 방안까지는 합의했지만 정보 수집권을 국정원에 부여할지 여부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부 방침 '기승전-테러방지법'?…"검찰까지 나선 것은 부적절" 지적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회의 조속한 법안 처리를 거듭 당부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테러방지법이 아직도 표류하는 것은 국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절실함이 없다는 방증"이라며 "부디 이번만은 이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지난 6일 "최근 여러가지 안보·안전 불안요인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등 국민안전 관련 법안이 아직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 처리를 촉구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보안시스템을 뚫고 밀입국한 외국인 사건이 연이어 불거진 것을 계기로 정부는 테러방지법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지난달 31일 황 총리 주재로 공항 테러·보안 강화 대책 관계장관회의를 열었을 때도 테러방지법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렇다보니 '기승전-테러방지법'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갈등은 여의도에서 살아 숨쉬고 있으며 법안 통과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까지 나서 테러방지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검찰 관계자는 국회에서 심사 중인 테러방지법에는 A씨의 행위를 처벌할 조항이 있느냐는 질문에 "검찰이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 같은 말이 더 앞선 시점에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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