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정치적 회고

머니투데이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 2015.12.2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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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박상철 교수


2015년은 한국정치의 흉년이다. 2015년을 맞이하면서 기대했던 것은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총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같은 전국단위의 큰 규모의 선거가 없어서 정치권이 오랜만에 정쟁에서 벗어나 정치적 협상과 업적물이 많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결과적으로 사상 최악의 흉작이자 세기말적 퇴행의 정치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된 한해였다.2016년의 정치전망을 위한 자료를 남기기 위해서 2015년의 한국정치를 정확히 회고하려 한다. 정확한 회고는 ‘기억’보다는 ‘기록’에 근거할 때 가능하다. 다행스럽게도 2015 정치적 회고를 위한 기록물을 1년간 준비해왔던 것이 있다. 올 1월 초부터 재개된 KBS 1라디오의 월요공감토론(구, 열린토론)의 고정패널이 되면서 매 주 토론준비와 결과를 꼼꼼히 정리하였는데 졸지에 정치회고의 기록물을 갖게 되었다. 정확한회고를 하고자 한다.



대통령은 독주, 야당은 갈등

2015년 초 한국정치의 회고는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누리당의 장황한 지지발언과 대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일반국민은 감동을 썩 느끼지 못했다. 많은 현안과제를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과 정윤회건 해명은 수사가이드라인 제시라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통일대박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치적 레토릭과 해법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울지 모르지만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저주의 집안싸움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과거의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과 야권분열은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고,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에게 3중고(3重苦)를 송두리째 안겨주고 있다. 지역주의적 논쟁과 야권연대 경험의 산물인 당내 이념적 갈등, 그리고 친노 패권주의로 호도되고 있는 당내 계파정치가 바로 그것이었다.

연 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으로서 강력한 정치적 드라이브를 준비했지만 예기치 못한 불협화음에 응집력을 갖지 못했다. 연말정산 증세 논란은 샐러리맨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다. 다만 새누리당의 새로운 원내대표로서 유승민 의원을 선출시킨 것은 당내 친박에게는 부담이었을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당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괜찮은 집권여당으로 비춰진 면도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국무총리로서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는 여ㆍ야간의 대화가 예감되는 또 괜찮은집권여당의 이벤트로 평가받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완구 총리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낙마되었지만.

2월 들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라는 새로운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지만 전당대회 기간 내내 박지원 의원과의 각축은 좋은 경쟁이 아니었다. 당내 팽팽한 세력분포도가 전당대회 이후 새로운 갈등의 전열정비로 전환되었다. 전당대회 이후 당내 이질적 세력 간의 화학적 결합을 하루도 해보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년 내내 시달릴 수밖에 없는 정치적 응어리를 가진 채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을 정치적 힘과 친정체제를 강화시키는 해로 삼았다. 이완구 총리의 임명은 그 큰 첫걸음이었지만 성완종 전 회장의 자살파동으로 망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권력강화는 개혁과 통합이 아닌 마이너스, 빼기정치의 스타일로 급변하였다.

2015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박근혜 정치를 시작하는 첫 해였기 때문에 5년 단임 대통령제에 있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중간결산, 사정정치는불가피한 것이다. 자원외교 및 성완종 수사는 그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완종 전 회장 리스트 파문은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적 기획과 동력을 잃게하였다.

독주는 독선으로, 갈등은 분열로

3, 4월의 정치적 주요 사건으로는 미국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중단사태, 사드배치 논란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논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논란 등이 있었는데, 이는 2015년 한국정치가 제자리를 잡는데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야당에게 있어서 이 이슈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정치적 아젠다였기 때문에 상당히 불리했다. 이것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게 되는 외부환경이었다면, 4.29 재ㆍ보궐 선거에서의 완패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존재근거마저 강타해버리고 큰 내상마저 입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지는 고스란히 여당의 잘못된 독주에 가교역할을 하는 셈이었다.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독선적인 주요 개혁정책이 시작되었고 그 첫 번째가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다. 정부의 공권력이 비록 공무원이지만 이해당사자와 직접 부딪치면서 해결사적 역할을 감당해야 될 정치권은 무력해지고 있었다. 정당이 합의보고 이해당사자와 국민들이 따라주는 책임정치가 아닌 이해당사자들의 충돌에 맞장구를 치는 후진적 정당정치의 양상이 노골적으로 노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경우에는 여ㆍ야간의 합의과정에서 대통령령에 대한 법률적 통제를 강화시키는 국회법 개정안 합의와 함께 여의도 정치의 존재감이 들어난 듯 했으나 종국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로 종결되고 말았다. 의리없는 정치인을 심판해달라는 대통령의 날 서고 별로 좋지 않은 정치프레임이 선보였다.내년 선거에 여ㆍ야당 간의 선거프레임의 한 단면을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5월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내갈등은 본격화되었다. 과거의 재보궐 선거는 집권당에 대한 중간심판으로서 야당의 전가보도였는데 언제부턴가 거듭되는 연전연패로 야당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치적 부도 위기로 몰리기 시작한 것도 4.29 재보궐 선거의 참패에서 본격화되었다. 야당의 무기력은 여당의 정치적 행보에 어떠한 제동 내지 스트레스도 주지 못했다. 덕분에 황교안 국무총리도 쉽게 지명ㆍ임명 되었다. 싱겁고도 무기력한 한국정치는 6월의 메르스 사태로 무중력상태에 빠져들었다. 돌이켜보건대 메르스는 괴물처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협박하고 조롱했다.

정치적ㆍ행정적 여과장치가 전혀 작동되지 않는 한국사회였다. 대통령은 메르스 때문에 미국을 방문하는 것도 연기해야 했다.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2015년 한국정치의 하반기에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독무대의 서막이었다. 국회법 개정안은 무산되었고 성완종 검찰수사 결과에 대한 세평은 친박무죄, 비박유죄였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찍어내기는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의 결정판이었다.

새누리당의 정치적 구조와 스타일이 급변하기 시작했다.새누리당의 강점은 대통령의 사람을 자처했던 서청원 의원과 이주영 의원이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되지 못하고 비박인 김무성과 유승민이 각각 대표로 당선된 당내 역학 구조는 역대집권당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민주적 정당으로 비춰질수 있었다.

그러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골격이 그대로 건재했다면 새누리당의 정치적 파워와 유연성은 대단했을 것이다.박근혜 대통령 중심의 집권여당의 정치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정치적으로 잃어버린 것이 상당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정당이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부도정당이라고 평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권의 정치변화에 아무런 정치적 훈수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정치이방인이 되어버리고 집안사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를 비롯한 많은비주류 정치인들이 일찍이 탈당과 신당창당을 예고하기 시작하면서 유력한 야권 주자, 박원순, 안철수, 안희정, 김부겸,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등 모두 개인 정치플레이에 몰입하기 시작했다.근본적인 당 체질개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의 정치에 몰두하게 되면 당이 졸지에 부도가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계속해서 정국현안과 국민들의 눈높이와는무관한 그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양김정치의 잔해로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8월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8.25 남북회담,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여 여부라는 굵직한 이슈가 있었고 정치권은 서서히 내년 총선을 대비한 당내 새판 짜기로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공천룰에 대한 정당 내홍과 정치세력의 변화 조짐이 시작된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는 정치적 겉포장으로서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정치개혁을 위한 전략공천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새누리당의 정상화를 위해서 새판 짜기가 불가피한데 김무성의 오픈프라이머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권을 봉쇄하는 격이었다.

친박과 비박간의 공천룰 내홍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권력과 헤게모니에 있는데 이는 내년 총선과 관련된 새누리당의 최대 현안이다. 정치 전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진두지휘를 예고하는 것이다.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내홍도 새누리당과 진배없다.

비주류에 해당되는 현역의원 대부분은 완전경선에 의한 후보결정을 원하고 혹시라도 문재인 대표에게 전략공천 권한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고 성토하는 공천 샅바싸움이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표가 혁신위원회를 띄우고 재신임을 묻는 것은 내년 총선에 있어서 당내 주도권,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공천권 행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자 함이다.

9월로 접어들면서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되었는데, 통상 임기 종료 직전 정기국회는 파장 분위기인 것이 관례이다. 파장의 장터에서는 마지막 거래가 쉽게 이루어지고 대충 마무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올해는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여ㆍ야간의 정치적 충돌 지점이 전 국가사회로 확대되어갔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이어서 시작된 노동개혁과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맞물리면서 정치적 이슈는 다양하면서도 확산일로인 반면에 국회에서 해야 될 일들은 차일피일 뒤로 미뤄지고 있었다. 선거구획정안 협상의 거듭된 무산과 한중 FTA 비준안 동의 지연 그리고 5대 노동법 관련 법안 여야 합의 등에 있어서 내용과 합의방식에 있어서 여야간의 치밀한 대화와 접촉이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는 생각보다 큰 사회적ㆍ정치적반향을 일으켰었다. 물론 종편을 비롯한 방송매체들의 양적팽창으로 인해 이슈화가 된 원인도 있지만 막상 YS의 과거를 회고해볼 때 지금의 한국정치가 보잘 것이 없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오랫동안 DJㆍYS의 양김정치를 청산하자고 외쳐왔었다. 보스 중심의 계보정치와 전라도 경상도의 지역연고주의를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양김이 만들어준 양김정치의 잔해로서 지역연고주의에 의존해서 정치를 하고 있고, 친박ㆍ비박, 친노ㆍ비노라는 계파정치 또한 여전하며 어쩌면 양김시대의 보스정치에 있었던 리더십이 다 빠진 자기 이해관계에만 몰두하는 ‘정치가 없고 영혼도 없는 계파정치’가 지금의 계파정치이다. YS의 서거로 양김정치의 마지막과 청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정치의 초라함을 우리는 보게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살아남기 위해서 최근 문ㆍ안ㆍ박 체제까지 유력한 정치카드로 내세웠다. 이미 개인화 되고 개별화된 당내 권력이 공동 내지 연합체제를 운영해 갈 수 있을까.정권교체의 중심이 될 제1야당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을까.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실험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열린우리당은 전국정당을 지향하고 계파정치를 청산해보려했지만 실패하였다.반면에 새누리당은 이러한 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형상 안정된 구조로 보일 수 있지만 탈지역주의와 탈계보주의에 대한 노력이 없는 새누리당의 구조는 더 불안정하다.

어쩌면 새누리당의 체질은 그들이 상대하기 쉽게 생각하는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내년에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2015년의 한국정치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잘못된 정치프레임을 만들어가고 있다.11월의 민중총궐기대회에 대해서 정치권은 무엇을 했는가.공권력과 민노총이 맞부딪치면서 들리는 파열음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소리가 아니라 과거 독재주의 체제의 굉음이다.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 은신하는 것을 두고 법무부 장관은 범죄인을 숨겨주는 자도 공동정범이라고 폭언을 일삼기도 했다. 정부와 국민이 충돌하면 그 사회는 최악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오직하면 조계사와 간은 종교단체가 중재역할을 하고 있는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적 선택을 받기 위해서라도 2015년의 한국정치를 정확하게 회고하고 스스로의 무능함에 대한 정치자백과 각성을 해야 할 때이다.2015년 12월을 허송하는 정당에게는 2016년의 기회가 없을것이다.

박상철 교수
법학박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대학원장/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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