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사라지면 '욕망'도 줄어든다. 징기스칸은 '결핍'의 중요성을 알았다. 적의 성을 공략하기 전 징기스칸은 병사들에게 주는 고기와 술을 줄여 '독기'를 끌여올렸다. 도시를 함락하면 배불리 먹고 마시고 마음껏 약탈하게 해주겠다는 말로 병사들이 '전의'에 불타게 했다. 그리곤 매번 약속을 지켰다.
솥을 깨고 배를 물 빠뜨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파부침주'(破釜沈舟)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에는 배를 불 사르고 솥을 깨뜨린다는 뜻의 '분주파부'(焚舟破釜)라는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굶어 죽지 않고 살아 돌아갈 길은 이기는 것 뿐이라는 사실 만큼 병사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도 없다. 이 역시 '결핍'의 힘이다. 서양에도 '다리 불태우기'(Burning bridges)란 개념이 있다. 전쟁에서 자신의 유일한 퇴로인 다리를 불태우는 전략이다. 물을 등지고 싸운다는 뜻의 '배수지진'(背水之陣)과도 일맥상통한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뒤 친정을 향해 "평생 야당하기로 작정한 당"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15일 부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야당이 '집권의지'를 상실했다는 뜻이다. "집권할 수도 없지만 집권해서도 안 된다" "물이 천천히 뜨거워지면 안락하게 있다가 죽는 냄비 속 개구리가 되는 것 아닌가"라고도 했다. 문제는 이런 문제의식을 안 의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리함을 뚫고 고(故)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야당의 '집권의지'는 왜 사그라들었을까? 정치권의 한 인사는 '국회선진화법'을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날치기 통과'를 차단해 야당이 합의해주기 전엔 사실상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게 만들어둔 '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이 어느덧 기득권화됐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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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사는 "여당 원내내표와 장관들이 야당 원내대표와 상임위 간사들에게 제발 만나 달라고 빌고, 여당이 쟁점법안 하나라도 통과시킬라 치면 야당이 '바터'(맞교환)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도 함께 통과시킬 수 있는데, 야당이 굳이 집권할 필요성을 느끼겠느냐"고 했다.
여당 지도부가 국회선진화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국회선진화법이 반드시 여당에게 불리한 법일까? 정당의 존재이유인 '집권'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