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향'이 믿었던 '성추행 사건'…"너마저~"
호소문을 작성, 유포한 익명 17명을 찾아달라며 박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 19일 사이버수사대에 진정서를 낸 지 8개월 만인 지난 8월 6일과 10일 성추행을 당했다는 K씨와 박 대표의 대질 조사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K씨와 그의 변호사, 박 전 대표와 그녀의 변호사, 그리고 경찰관이 참석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11월 10일 경찰은 K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호소문만 보면 당연히 박 전 대표에게 책임이 부과될 것 같은데, 사건이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결국 경찰의 온·오프 기관이 모두 조사한 이 사건의 결론은 박 전 대표 '무혐의', K씨 '입건'으로 요약됐다.
사건이 180도 바뀐 것은 경찰이 여러 차례 수사하면서 얻어낸 단서들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처음 경찰서에 갔을 때, 모든 경찰이 호소문대로 나를 '이상한 여자'로 쳐다봤다"며 "하지만 나의 결백을 위해 모든 수사에 끝까지 일관적으로 임했다"고 했다. 경찰은 호소문 내용대로 관련자를 불러 욕설과 막말, 성추행에 대한 얘기를 들었으나, 진술이 서로 엇갈리는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증언들과 마주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증언들이 뒤죽박죽이었다. 서울시 인권센터 시민인권보호관이 낸 결정문 6페이지에는 "참고인 B씨는 당시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K씨로부터 카카오톡으로 '그날 박 전 대표에게 너무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적혀있는데, 회식이 있던 2013년 9월 26일에 시향 관계자 중 해외 출장자가 없어 참고인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권보호관이 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결정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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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K씨의 진술을 토대로 회식에 함께 참석한 예술의전당 관계자를 조사했더니,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 들은 성추행 사건이 그날이 아니라 다른 날인줄 알았어요." "전혀 낌새도 못챘는데…" 등 참석자들의 진술 중 어느 하나도 K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진술을 받아내지 못했다.
결정적 단서는 8월 4명의 대질조사에서 나왔다. 4명 중 누구도 몰랐던 '한방'을 경찰이 입으로 직접 K씨에게 물은 것이다. "000이 누굽니까"(경찰) "▲▲▲의 □□입니다"(K씨) "그런데 △△△가 000한테 왜 섭외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나요"(경찰)
경찰이 확보한 결정적인 문자는 K씨의 성추행 사건이 갑자기 만들어졌을 가능성에 대한 증거로 처음 제기됐다. 검찰에 송치된 관련 자료에는 이 결정적 문자 메시지 내용이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신자 추적이 어려운 호주의 어느 사이트에서 17명이 작성한 호소문은 대동단결의 힘이 빛날 만큼 한치의 오차도 없어 보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허점 투성이었다는 게 경찰이 내린 결론이다. 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들었다는 얘기가 전부인 '증언'들, 그 증언마저도 서로 사인이 안 맞아 일관성도 신빙성도 떨어진다는 것이 경찰의 해석이다.
서울시향 직원들이 가장 강하게 밀어 부쳤던 성추행 사건이 이 정도라면, 다른 문제들은 어떨까. 호소문 발표와 동시에 박 전 대표가 줄기차게 제기했던 '정명훈 감독의 사조직과 비리'에 대한 시선이 자연스럽게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