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내부자들]'본 사람은 없고 들은 사람만'…시향 성추행사건 진실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11.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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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팩트] 경찰조사로 다시 본 서울시향 사건…"공평한 수사 이뤄져야"

[서울시향 내부자들]'본 사람은 없고 들은 사람만'…시향 성추행사건 진실은?


지난해 12월 2일, 서울시향 직원 17명은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를 성추행과 욕설을 한 안하무인 인격체로 몰아세우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서울시향을 지키고 싶은 직원 17명 일동’의 주장은 구체적 진술로 힘을 얻으며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언론들도 하나같이 호소문을 근거로 그녀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박 전 대표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박 전 대표를 파렴치한 여성 CEO로 모는 데 힘을 실은 언론 보도 건수는 지난 9월 기준, 160개 매체 3000여 개에 이른다. 박 전 대표는 ‘무혐의’를 주장했지만, 다수 언론은 그녀의 입장을 살피지 않았다.

사건 발생 1년, 놀랍게도 경찰 조사에서는 다른 사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마치 서울시향의 ‘내부자들’이 ‘고의로 입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호소문의 내용은 처음 주장과 다른 것으로 속속 드러났다. 급기야 고소인 5명과 박 전 대표와의 대질 조사 등 필요한 수사를 마친 경찰은 지난 8월 12일 박 전 대표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호소문 발표에 참여한 직원 10명은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됐고, K 씨에게는 성추행 피해를 입증하지 못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법원은 영장 기각)



도대체 1년 전 서울시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그들은 자기 조직 대표를 고소하고, 심지어 ‘성추행’이란 누명까지 씌운 것일까.

박 전 대표는 “처음 경찰서에 갔을 때, 모든 경찰이 호소문대로 나를 ‘이상한 여자’로 쳐다봤다”며 “하지만 결백을 위해 모든 수사에 끝까지 일관되게 임했다”고 했다. 1년 가까운 싸움 끝에 경찰 조사에서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그녀는 여자 성추행 CEO의 나쁜 표본으로, 악덕 상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강의에 인용될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1년 간 상황이 바뀌면서 다수의 호소문과 진술이 아닌 박 전 대표의 인터뷰와 경찰 수사를 토대로 진실의 줄기를 좇았다.



[서울시향 내부자들]'본 사람은 없고 들은 사람만'…시향 성추행사건 진실은?
호소문을 작성, 유포한 익명의 17명을 찾아달라며 박 전 대표가 사이버수사대에 진정서를 낸 것은 지난해 12월 19일. 그로부터 8개월 만인 올해 8월 6일과 10일, 성추행을 당했다는 K 씨와 박 대표의 대질 조사가 두 차례 걸쳐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K 씨와 그의 변호사, 박 전 대표와 그녀의 변호사, 그리고 경찰관이 참석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11월 10일, 경찰은 K 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건이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경찰 온·오프 기관의 결론은 박 전 대표 성추행 ‘무혐의’, K 씨를 포함한 직원 ‘입건’으로 요약됐다.

◇ 여성 CEO의 남성 직원 ‘성추행’ 거짓말, 경찰 ‘결정적 단서’ 찾다

사건이 180도 바뀐 것은 경찰이 여러 차례 수사하면서 얻어낸 단서들 때문이다. 경찰은 호소문 내용대로 관련자를 불러 욕설과 막말, 성추행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진술이 서로 엇갈리는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증언들과 마주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증언들이 뒤죽박죽이었다. 서울시 인권센터 시민인권보호관이 낸 결정문 6페이지에는 “참고인 B씨는 당시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K 씨로부터 카카오톡으로 ‘그날 박 전 대표에게 너무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적혀있는데, 회식이 있던 2013년 9월 26일에 시향 관계자 중 해외 출장자가 없어 참고인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권보호관이 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결정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K 씨의 진술을 토대로 회식에 함께 참석한 예술의전당 관계자를 조사했더니,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 들은 성추행 사건이 그날이 아니라 다른 날인 줄 알았어요.” “전혀 낌새도 못챘는데….” 참석자들의 진술 중 어느 하나도 K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결정적 단서는 8월 4명의 대질조사에서 나왔다. 4명 중 누구도 몰랐던 ‘한방’을 경찰이 K 씨에게 직접 물은 것이다. “000이 누굽니까”(경찰) “▲▲▲의 □□입니다”(K 씨) “그런데 △△△가 000한테 왜 섭외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나요.”(경찰)
경찰이 확보한 결정적인 문자는 K 씨의 성추행 사건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에 대한 증거로 처음 제기됐다. 검찰에 송치된 관련 자료에는 이 결정적 문자 메시지 내용이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신자 추적이 어려운 호주의 어느 사이트에서 17명이 작성한 호소문은 대동단결의 힘이 빛날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허점투성이라는 게 경찰이 내린 결론이다. 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들었다는 얘기가 전부인 ‘증언’들, 그 증언마저도 일관성도 신빙성도 떨어진다는 것이 경찰의 해석이다.

서울시향 직원들이 사실인 것처럼 강하게 주장했던 성추행 사건이 이 정도라면 다른 문제들은 어떨까. 성추행 문제 제기 하나만으로 나락으로 추락한 박 전 대표는 그 오해 속에서도 ‘정명훈 감독의 사조직과 비리’ 문제 제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실제 박 전 대표가 꼬박 1년을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하면서 경찰의 무혐의 판정을 받아내는 동안, 정 감독의 항공료 의혹은 더 불거졌고, 그의 앞뒤 안 맞는 행보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이번 사건이 정 감독 측근에서 야기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사건의 중심은 정 감독과 그 ‘윗선’으로 이제 향하는 듯하다.

경찰이 찾은 결정적 단서는 ‘성추행 조작의혹’의 K 씨를 ‘섭외’한 문자만이 아니었다. 이 사건에 개입한 ‘윗선’의 흔적도 함께 발견됐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증언이다. 직원 17명의 마음을 쥐락펴락한 ‘윗선’의 명단 일부를 경찰이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정 감독은 표면상으로는 직접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도 하지 않는다. 그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는 부인 구순열씨와 비서 백모씨를 통해야만 한다. 박 전 대표는 직원들이 호소문의 내용을 정 감독에게 알리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에 대해 “정 감독이 왜 내게 그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서울시장에 먼저 흘렸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정 감독은 이에 대해서도 직접 말하지 않았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호소문을 언론에 배포하기 전에 정 감독이 박 전 대표와 만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호소문 때문이 아니라, 단원 평가에 대한 직원의 실수 문제로 만난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 인권센터 조사부터 홍보담당관까지 ‘부실’에 ‘협박’…원점에서 ‘재검토’ 필요

박 전 대표가 사퇴 압력을 받기 시작하던 그해 10월 말, 서울시는 시향의 문제점도 함께 알려달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의 시향 사조직화 문제를 비롯해 항공료 의혹 등 각종 문제점을 11월 초 이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의회의 특별 조사내용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서울시 인권센터 시민인권보호관은 그해 12월 23일 ‘호소문이 사실’임을 직시한 결정문을 발표하고 서울시 인권센터 사이트에 게시했다. 올해 초엔 ‘인권센터 결정례 책자’로 만들어 인권강사 양상 교육 교재로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 혐의 인정이 어렵다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 서울시 인권보호관이 2주일 만에 직원들 조사를 토대로 박 전 대표를 가해자로 취급한 것에 대해 서울시 의원조차 “인권을 침해한 성급한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센터의 성급한 결론은 기초 사실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데서 비롯했다. 센터는 익명 17명을 모두 확인하지 않았고,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한 명도 조사하지 않았다. 참고인 진술에서 내용도 거짓으로 확인됐다. (‘출장시 들었다’→‘출장자 없음’)

서울시가 취한 조치 중 박 전 대표가 겪은 가장 황당한 일은 그녀가 해명 기자회견 장소에서 받은 ‘찌라시’였다. 당시 시향 홍보팀장이 당시 서울시 언론담당관으로부터 전해 받은 ‘찌라시’엔 ‘박 전 대표 9년 이혼소송 70억 챙겨’라는 제목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대표님 언론 접촉 못 하시게 해라. 신상털기 들어간다”는 설명도 추가됐다. 이혼한 건 맞지만 돈 한 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법원 기록에도 나와 있다. 당시 시향 홍보팀장은 무슨 이유인지 올해 8월 팀원으로 강등됐다. 당시 서울시 언론담당관은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서울시장과 서울시 관계자, 서울시 인권센터 등이 급행열차 속도로 박 전 대표 사건을 ‘처리’한 과정은 의혹투성이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그녀가 ‘무혐의’를 받은 것만으로도 이 사건은 원점에서 ‘공평하게’ 다시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권’을 그토록 강조하고 외치는 박 시장의 책임 아래 있는 ‘서울 시향 사태’야말로 부끄러운 인권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내부자들]'본 사람은 없고 들은 사람만'…시향 성추행사건 진실은?
◇ 정 감독, 왜 일방적으로 시향 직원 편들었나

박 전 대표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데 정 감독과의 불화가 원인이 결정적이라는 시각이 서울시향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의 불화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박 전 대표는 그 시작을 ‘박00’이라는 이름에서 찾았다.

박 씨는 정 감독 막내아들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2005년 정 감독이 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 오면서 당시 59세인 박 씨도 함께 왔다. 당시 이팔성 서울시향 대표가 50세 입사 규정을 위반할 수 없다며 거부했지만 결국 성사됐다. 박 씨는 매년 10억 원씩, 3년간 30억 원의 협찬금을 따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박 씨는 정 감독의 개인재단인 ‘미라클 오브 뮤직’의 협찬을 따오기 위해 서울시향 명함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3년 서울시 감사과의 정년 제도 도입 문제 제기로 70세를 코앞에 둔 박 씨의 퇴직이 현실화하자 정 감독은 다시 나섰다. 정 감독은 프랑스 출장에서도 전화를 걸어 박 씨의 복직을 요구했고 박 전 대표는 “서울시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14년 6월 정 감독은 저녁 식사에 박 전 대표를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정 감독은 “박00을 다시 데려오라”며 소리를 질렀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전언이다.

정 감독은 지난해 12월 연습실에서 박 전 대표와의 갈등, 자신의 횡령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원래 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런 것 모르는 사람이에요. 집안에서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략)”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왜 그렇게 박 씨 문제에는 집착했을까. 특히 항공료 횡령, 개인 리사이틀 개최, 과도한 연봉, 정 감독 소속사 ‘아스코나스 홀트’의 일감 몰아주기 등 갖은 의혹에 정 감독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도, 박 전 대표를 ‘공격’하는 직원들의 호소문에는 “직원들이 불쌍하다”며 적극적으로 나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서울 시장 “사실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가라” 종용 왜?

박원순 시장의 행태도 논란에서 빗겨갈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오기까지 서울시향 대표 자리는 1년간 공석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 감독 두 사람의 마음에 동시에 드는 인물이 그때까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혼연일체로 꼽은 인물이 박 전 대표였다.

박 시장 측은 박 전 대표에게 연락을 취해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박 전 대표는 “(나는) 여기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고사했다. 여러 번 거절했지만, 박 시장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2달 반을 넘겨 차 한잔 마시는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수락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자 박 시장은 박 전 대표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취임한 지 1년 8개월쯤 지난 지난해 10월 중순쯤, 박 전 대표는 서울시 정무라인을 통해 11월 말까지 정리해달라는 요구를 전달받았다. 직원 10명이 서명한 연판장을 증거로 정 감독을 비롯한 직원들이 박 전 대표를 더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 시장은 12월 1일 오전 8시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으로 박 전 대표를 불러내 “당장 나가달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그냥 말도 되게 간단했어요. 내일(2일) 직원들이 저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할 예정이니 빨리 나가달라고. 지금 서울시 의회가 열리고 있는데, 제가 당장 나가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니 의회가 끝나는 12월 중순쯤 나가겠다고 하니, 당장 나가달라는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박 시장은 박 전 대표의 해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나가라”고만 몰아친 셈이다.

박 시장은 그해 12월 언론사 사회부장들과 오찬을 하면서도 호소문에 근거한 박 전 대표에 대한 비난을 여과 없이 털어놨다. “그렇게 직원에게 꾸중해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 “폭언 등이 사실이라면 경영자로서 문제가 있다” 등이 그것이다.

박 시장은 그 자리에서 정 감독과 관련한 말도 했다.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지휘자가 문제가 좀 있다고 하기로서니 배제해버리면 그 대안이 있느냐”라고. 박 전 대표는 “후계자를 키우자고 제안하거나 항공료를 법인카드로 결제하면서 세금을 절약하자는 취지가 유명 지휘자의 비리보다 더 정당하지 못하다는 뜻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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