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위한 '공급망금융' 활성화 하려면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5.10.2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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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핀테크 혁명을 금융기관 대신 ICT기업에게 맡겨 보자

편집자주 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중소기업은 태생적으로 담보와 신용이 취약하기 때문에 창업부터 자생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국가적 산업기반조성 차원의 금융 지원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금융기관에게 있어 중소기업은 비즈니스의 동반자라기 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해야 하는 불편한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지원조차도 정부의 신용보강이나 정책금융 내지는 기업자체의 부동산 평가액 범위 내에서 집행되기 때문에 일시적인 운전자금 부족이 생기는 경우에는 추가 자금 조달에 상당한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심하면 일시적 유동성 부족이 도산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금융기관 만을 탓하기도 어렵다. 어차피 수익성이나 건전성은 단위 금액을 기준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수십 개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하기 보다는 한 개의 대기업 대출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태생적인 담보부족 및 자금부족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금융기관에게는 위험 경감 및 새로운 수익원을 제공하는 ‘공급망금융(Supply Chain Financing)’이 ICT혁명과 더불어 주요한 상생전략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공급망금융(SCF)은 재화의 생산과 판매에 이르는 공급망(supply chain)에 개입하는 판매자·구매자·금융기관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엮어서 금융과 비즈니스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금융시스템으로서 거래상대방의 신용 내지 보유 부동산이 아니라 거래물품(동산,動産)을 주요 담보로 금융서비스가 제공된다.

2000년대초 글로벌 시장에서 그 유용성이 주목받기 시작했으나 동산담보물의 위치추적, 환가성 및 평가, 허위여부 등에 대한 관리시스템이나 비용문제 때문에 활성화가 어려웠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ICT혁명에 힘입어 공급망 관리에 필요한 시스템의 문제점들이 풀려나가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훨씬 세련되고 발전된 핀테크혁신이 가세되면서 공급망금융의 활성화가 급진전되는 시점에 놓이게 됐다.


금융연구원이 11일 내놓은 ‘중소·창업기업을 위한 공급망금융 활성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2012년10월 Supply Chain Finance Initiative, 미국은 2014년7월 Supplier Pay Initiative를 발표함으로써 중소·창업기업을 위한 공급망금융의 활성화를 정부 차원에서 도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13년7월 모스크바에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공동선언문’서도 중소기업 금융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동산을 담보로 한 금융거래 시스템’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공급망금융의 글로벌 활성화가 급격히 진행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공급망금융시장이 운영된 지 10년이 넘었고 시장규모도 2013년 기준 2천750억 달러(원화 310조 원) 수준으로 매년 1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시장의 대부분은 대형 상업은행(시티은행, JP모건, 도이치은행, HSBC, 중신은행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급망플랫폼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시장의 활성화에 발맞추어 우리나라도 공급망금융의 핵심인 ‘동산담보법’이 2012년 6월부터 시행됐으며 2년여의 준비끝에 2014년 7월부터 동산담보의 인터넷 등기가 가능해짐으로써 공급망금융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초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동산물품을 관리하기 위한 제반 ICT 인프라(LTE, WiFi, Bluetooth, NFC, GPS, RFID 등) 수준을 감안한다면 글로벌 수준의 공급망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금융시장을 발견해내고 기존의 인프라를 융합하여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엮는 플랫폼을 선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망금융시장도 ICT비지니스와 마찬가지로 플랫폼을 선점하는 상위 1~2위가 시장을 독식할 것이 분명하다.

공급망금융의 유용성과 필요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바,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핀테크혁명과 더불어 글로벌 P2P금융이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B2B금융의 하나인 공급망금융도 급속히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우간다 보다 낮은 금융경쟁력(세계경제포럼발표 한국 금융경쟁력 87위)이 알려지면서 금융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전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공급망금융시장에서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수준임을 볼 때 당연하다는 자괴감이 든다.

이럴 바에는 핀테크혁명을 ICT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공급망금융의 플랫폼 구축을 금융기관이 주도하다가는 공급망금융의 장점을 살리지도 못한 채 우리나라의 금융경쟁력 순위만 더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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