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체 모양에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입힌 그래픽/사진=위키미디어
최근 유전자(DNA) 검사로 특정 남성의 성 정체성이 동성애자(게이)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주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미국 인간유전학회(ASHG; 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에서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엔젤레스의 에릭 빌레인(Eric Vilain)교수와 턱 응운(Tuck Ngun) 박사 연구팀은 둘 중 최소 한쪽이 게이인 남자 일란성 쌍둥이 47쌍의 타액을 채취해 DNA를 분석한 결과 동성애자의 가능성을 정확하게 67% 예측했다고 밝혔다.
최초로 '게이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미국 국립 암센터의 유전학자 딘 하머(Dean Hamer)다. 1993년 하머 박사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과 그 형제 38쌍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는 X 염색체의 'Xq28'이라는 위치에 존재하는 유전자가 동성애 성향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결과를 재현하려던 수많은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10배 큰 규모의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하머 박사의 연구 결과는 끝내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 후 노스웨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마이클 베일리(J. Michael Bailey)와 노스쇼어 대학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던 알란 샌더스(Alan Sander)가 2004년부터 5년에 걸쳐 새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총 409쌍의 동성애 성향을 가진 형제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연구 결과는 놀랍게도 과거 하머 박사가 지목했던 것과 같은 'Xq28'지역과 8번 염색체상의 또 다른 부분이 동성애 성향에 관련 있다고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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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의 유전학자 닐 리쉬(Neil Risch)는 당시 '사이언스'지를 통해 베일리와 샌더스의 연구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게이 유전자'에 대한 의심은 계속됐다.
◇"게이 유전자가 아니라 후생유전학적 표지가 동성애 유발"
2012년에는 드디어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의 진화유전학자 윌리엄 라이스(William R. Rice)에 의해 '게이 유전자'가 아니라 후생유전학적 표지가 동성애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라이스 박사는 아빠에게서 딸로, 또 엄마에게서 아들로 후생 표지자가 전해지는 경우 동성애 성향이 유발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표지자가 태아의 자궁 내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민감도에 영향을 줘 여자아이의 뇌를 남성화시키거나 남자아이의 뇌를 여성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턱 응운 박사후 연구원 주도로 수행된 이번 연구는 동성애 성향을 가지는 47쌍의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47쌍 중 두 명 다 게이인 경우가 10쌍, 둘 중 한 명이 게이인 경우는 37쌍이었다.
동성애자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번 연구 결과는 ‘게이 유전자’를 찾아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태아의 발생 과정에서 염색체는 화학적 변화를 겪으며 유전자의 발현 수준이 조절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메틸화다. 즉, 이번 연구는 동성애 영향을 유발하는 후생유전학적 요인을 찾아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여전히 '게이 유전자'의 실재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빌레인 교수와 연구진은 지난 9일 '사이언스'지를 통해 이번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동성애 성향을 인위로 조작하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베일리 교수는 이런 오용 사례는 걱정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어떤 경우라도 가설 또는 특정 사례에 기반해 성적 방향성의 근원에 대한 연구가 제한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더 강조했다. 또, 유전체의 구성이 동일하고 발생 과정을 함께하는 일란성 쌍둥이가 왜 다른 메틸화 패턴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앞으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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