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즉석에서 좋은 연구 주제라고 맞장구를 치고 논의를 잔뜩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구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한국의 경제 수준과 마찬가지로 금융도 곧 선진국 수준으로 인정받을 텐데 의미 있는 연구일까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우리나라 금융부문이 늘 하위권입니다. 선진국까지는 아니더라도 후진국 수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잘 납득이 안 됩니다. 평가방식이 기업인 대상의 설문조사다 보니까 만족도 조사 성격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금융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한국의 금융에 대해서 평가가 심하게 엇갈리는 것은 왜일까요. 객관적으로 보이는 지표와 평가자가 체감하는 주관적인 평가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받아도 때로는 실력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 하는 학생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성적이 좋아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 하는 것은 시험성적이 아니라 평소에 그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경험과 그 경험의 전파를 통한 평판이 영향을 준 것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에 대한 평가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숫자상, 외견상으로는 좋은데 실제 돌아가는 행태를 보면 영 아닌 것 같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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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선진화의 핵심은 주어진 룰(rule)에만 맞으면 누구나 마음 놓고 금융행위를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룰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하지 말라고 돼 있어서 ‘안 했더니’ 관행적으로 해도 되는 것이라던가, 알아서 하라고 돼 있어서 ‘했더니’ 그건 하면 안 되는 거였다고 한다던가. 걱정되는 부분이 있으니 ‘임시로’ 하지 말라고 해 놓고서는 그 걱정 요인이 사라져도 한참동안 아무 말 없다던가, 이런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누군가가 경험하면 그 불만은 급속도로 전체 금융시장에 퍼집니다. 자신과는 직접 관계없는 사람에게도 규제의 후진성이 각인됩니다. 100가지가 맘에 들다가도 이 한가지로 금융 부문 설문항목에는 낮은 점수를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요.
이는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부 규제의 부담, 정책결정의 투명성, 의사결정의 편파성 같은 지표들이 낙제점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금융위원회가 “행정규제 같은 그림자 규제 안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2008년 칼로미리스 교수와 필자가 “한국은 여전히 신흥시장국인가?”라는 연구주제를 구상하면서 여섯 개의 세부 주제를 확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1) 은행 부문의 구조개혁과 영업행태, (2) 소비자금융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 (3) 기업지배구조 개선 수단으로서의 주식시장, (4) 기업체질의 시금석으로서의 채권시장, (5) 국제자본이동으로부터의 안전장치, (6)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의 경제안정화 기능이 그것입니다.
시간은 지났어도 여전히 한국의 선진 금융을 위해 짚어보고 넘어가야 하는 과제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