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9호선 2단계 연장구간이 개통한 후 첫 월요일인 30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가양역에서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급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사진=뉴스1
결혼 5년차인 대기업 직장인 최모씨(37)는 전세 만기를 5개월 앞두고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부동산을 수소문해 봐도 전세는커녕 반전세도 귀하다. 그마저 매달 월세나 이자부담이 크다. 최씨는 "신혼부터 아내와 부모님 도움 없이 잘 살자고 했는데 자꾸 무너진다. 야근에 주말근무에 지쳐 쓰러지듯 열심히 살아도 집 한 채 못 구하는데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이모씨(49)는 "'헬조선'이란 말을 듣고 단어가 주는 막막한 느낌에 공감했다. 퇴직금으로 차린 가게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손님이 적다.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무기력감을 느끼고, 정부를 탓하는 것도 지친다"고 말했다.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엠브레인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6.4%가 '이민을 구체적으로나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봤다'고 답했다./자료=엠브레인
구체적으로 이민을 고려한 이유로는 '갈수록 빈부격차와 소득불평등이 심해져서'(37.8%)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여유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33.8%)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준단 생각이 들지 않아서(32.4%)란 응답이 다수였다.
실제 지니계수와 함께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지표인 우리나라 소득 5분위배율(상위 20%의 소득/하위 20%의 소득)은 2012년 5.54로 OECD 평균인 4.87보다 높다. 생산가능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한 비율은 64%로 OECD 평균인 66%에 못 미치고, 그마저도 자영업과 불완전고용이 증가해 고용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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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행복도 조사 순위는 OECD 국가 36개 중 27위에 그친다. 156개국을 대상으로 한 UNDP의 행복도 순위에서도 41위에 그쳤다. 갤럽의 행복도 설문조사에선 148개국 중 97위로 굴욕적인 수준이다.
최진웅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고용환경이 악화됐다"며 "소득편차 축소, 고용률 제고, 공동체 의식 강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삶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990년 이후 25년간 국민소득은 크게 높아졌지만 중산층 비중은 2000년대 이전보다 줄었다. OECD국가 중 재정정책의 소득재분배를 통한 중산층 비중 제고효과도 가장 낮다"며 "주거비와 교육비 등 지출부담을 완화시키고 여가활용에 대한 사회인식을 높이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세대를 아울러 '지옥(hell)'을 방불케하는 생활여건이나 소득격차 등에 대해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관계부처합동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루이틀 만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보니 장기적으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야당의원들이 '헬조선이란 말을 아느냐'고 묻자 "들어본 적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헬조선 현상'이 단지 청년층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접근하는 방식도 본질에서 비껴나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는 일침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순한 청년문제가 아니라 재화가 소수 특권층에 편중되면서 일반 국민들에겐 기회가 박탈되고 생활이 불안정해지는 불평등의 문제"라며 "여러 분야에서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좌절감, 그로 인한 중산층 몰락과 부의 편중 문제를 본질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청년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만 봐도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다. 청년희망펀드를 얘기하는 데 시혜를 베풀듯 모금해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