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춘계 해외 이민·투자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이민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2015.3.29/뉴스1
권 씨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자리 잡기 위해 치기공사로 직업을 바꿨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치과용어를 영어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하나뿐인 아들을 보면서 '한국을 떠나길 잘했다'고 생각 중이다.
#2. 예비 신부 B(30) 씨는 2년 째 '엄마표 영어 교육' 블로그나 학생 대상 영어 캠프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유아 영어교육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가 이렇게 낳지도 않은 아이의 영어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는 한국의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지 않고 있어서다.
한국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코리아 난민'은 공통적으로 "내 아이에게는 답답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녀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 이른바 '억 소리'나는 사교육비를 투자해도 취업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이런 암울한 상황이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탓에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해외에서 새출발을 하겠다는 것이다.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의뢰한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활용한 청년실업률 분석결과'에 따르면, 통계청의 올해 7월 기준 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한 체감 청년실업률은 22.5%로 집계됐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취업난은 이미 치열한 대학 입시에서 예고된 일이다. 한국은 일단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대기업에 취직할 수 없고, 이것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풍토가 오랫동안 정착돼 왔다.
반면, 청년층의 노인부양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생산인구(15~64세) 100명 당 노인(65세 이상) 수'를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지난 1990년 7.4명에서 올해 17.9명으로 부쩍 늘었다. 통계청의 추정에 따르면 노년부양비는 2020년 22.1명, 2030년 38.6명으로 급증해 2060년엔 80.6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생산인구의 부담이 급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고령자 1명을 부양할 생산가능인구는 13.5명(1990년)에서 5.6명(2015년)까지 줄었다. 통계청은 2040년엔 고령자 1명을 부양할 인구가 1.7명까지 급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다보니 청년층의 이민문의는 예년보다 부쩍 늘어난 상황이다. 과거에는 보통 중장년층의 투자이민 상담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 들어서는 20~30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관련 업계는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대학생들은 유학부터 취업까지의 연결을 원하고, 30대는 한국의 직업으로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며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상당한 수준의 노동이 필요한 '닭공장'에 취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닭공장은 별다른 기술이 없는 한국인들이 미국 영주권을 따기 위해 꾸준히 찾는 업종으로, 일종의 냉동공장이다. 실제 서울의 한 명문대를 졸업한 C(34)씨는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을 설득해 미국의 닭공장에 취업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등지고 해외 공장에 취업할 정도로 청·장년층의 냉소는 극에 달해 있다. 흔히 지금의 20대는 취업, 결혼, 출산 등 인간다움을 누릴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로 불린다. 또한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전망을 거의 모든 세대가 공유하는 상황이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청년층의 소득을 높이고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해야 저출산과 함께 각종 사회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된다"며 "정부의 이 같은 파격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최근 유행하는 자조적인 표현인 '헬조선'의 유행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