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쳐톡톡]'호모딴짓엔스' 등장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2015.09.1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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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의 컬쳐톡톡]'호모딴짓엔스' 등장


지난 주 토요일, 이대 앞 카페에서 벌어진 ‘딴짓 매거진’ 창간파티에 갔다. 대기업을 다니다 막 퇴사했거나 출판사에 다니는 젊은 편집자거나 소소한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디자이너 등 세 여성이 만든 창간 파티다. 30전후 젊은이들이 꽤 모였는데 분위기는 꽤 자유로웠다.

매거진 첫 장을 보니 호모딴짓엔스(Homo-Ddanzitens)란 말이 떡 적혀있다. 정의를 보니 ‘밥벌이와 연관이 없는 활동을 하는 인류를 말한다. 인간의 행동을 딴짓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인간관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주로 1980년대 출생자로 소소하고 쓸데없는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채우는 인간집단을 포괄하고 있다.’ 뜻이란다. 요즘 젊은이들의 절실한 바람과 일치한다.



매거진을 더 넘기니 “청춘을 팔아 돈을 챙기는 이들에게 딴짓을 추천한다. 어쩌면 정체된 우리 세대에게 어울리는 건 ‘꿈’이 아니라 ‘딴짓’일지도 모른다.”란 글이 푹 들어온다. 매거진을 만든 3명 중 대기업 출신인 1호의 글이다. 4인의 호모딴짓엔스 좌담회 내용 중에서는 캄보디아털보라는 이가 “꿈을 강요하는 사회, 꿈의 높낮이를 재는 사회, 딴짓을 두고 가치판단을 내리는 사회현상이 딴짓하는 사람을 기인으로 만드는 거죠.”라고 한 것도 들어온다. 그는 사진작가로 캄보디아 등 제3세계 어린이들의 사진을 담는 일을 한다.

창간 설명회에서 창간 멤버들의 자기를 부르는 호칭이 좀 특별했는데 그들은 각각 1호, 2호, 3호라고 불렀다. 나이순이란다. 그런데 이 호(號)라는 것은 집단에서 순서를 정해 부르는 뜻이지만 어원을 알고 보면 뜻이 꽤 묘하다. 호의 오른쪽은 호랑이(虎)의 뜻이고 왼쪽의 글자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울부짖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호령(號令)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딴짓 1호, 2호, 3호에게는 왠지 이 어원의 뜻이 잘 어울릴 것 같다. 뭔가 막 말하고 싶어 우리를 차고 나온 새끼 호랑이 그녀들이니까.



매거진은 이 사회가 8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를 보던 삐딱한 시각을 뒤집어 묻고 있다. 딴짓하면 왜 안 되는 데요? 돈이 모든 것을 걸 만큼 중요한 거예요? 이렇게. 그럼에도 호모딴짓엔스들은 거친 비난도 획기적 주장도 하지 않는다. 담담, 소소, 그냥, 장수파티를 했으면... 이런 말들로 일관한다.

이들을 보니 불현듯 매칭되는 그룹이 떠오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1919년 2월 1일에 창간한 국내 최초 문학동인지 <창조>다.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이 창간 멤버인데 모두 평양 출신의 부유한 집 자제들이다. 이들이 발표한 게 <불놀이>, <약한 자의 슬픔〉, <혜선의 사〉등이다.

당시 이들의 나이가 앞의 둘은 19세, 뒤는 25세. 요즘 나이는 실제 나이에 0.7을 곱해야 예전 세대들의 사회적 나이와 같을 거라고 하니 2015년 딴짓 창간 멤버 1호, 2호, 3호 나이가 <창조> 동인지 나이와 비슷할 것 같다. 당시 1900년대 초 한학을 했던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보면, 현대 문학을 하겠다는 이들 1919년 남자 1호, 2호, 3호들도 분명히 딴짓한 젊은이들이었을 것이다. 최초는 대부분 딴짓한 사람들의 짓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이, 어떻게 감히 창조 동인과 비교를?’ 하면서 2015년 딴짓 매거진 멤버들이 부담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둘은 공통점이 있다. 호모딴짓엔스들이라는 점에서. 이 두 그룹이 다른 점은 ‘밥벌이와 연관이 없는 활동을 하는 인류’란 글이다. 작은 차이 같지만 엄청나게 큰 차이다. 사실 이런 인류는 고대 그리스 귀족들과 유럽 신사 그리고 조선 선비들의 삶이기도 했는데, 나의 꿈과도 꼭 같다. 그래서 거울에 말하듯 응원의 말을 날려본다. 호모딴짓엔스들아, 딴짓을 꼭 이루시길! 꼭 새로운 인류가 되기를!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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